강경파도 勢 결집… 협상파 압박

정동영 등 민주 소속의원 47명 "FTA 당론 고수하라"
정범구의원 주도로 동의받아 金원내대표에 전달
세력 부풀리기등 내홍 부추기고 자중지란 깊어져

박희태(가운데) 국회의장이 17일 오후 국회의장실에서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와 한미 FTA 비준안 논의를 위해 만나고 있다. /오대근기자


"선(先)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폐기 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비준해야 한다는 기존 당론을 유지한다."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이 17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들고 소속의원 47명의 서명을 받았다. 민주당 당론으로 확정된 사실을 또다시 확인하는 기이한 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특히 여야 합의처리를 주장하는 협상파 측이 45명의 동의를 받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데 이 둘을 합치면 92명으로 민주당 전체 의원 수(87명)를 뛰어넘는다. 각 세력 간 자기 입맛에 맞는 아전인수격 해석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동영 최고위원 등 강경파 의원 10여명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긴급모임을 갖고 한미 FTA 처리와 관련해 '기존 당론을 고수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작성, 이를 지지한다는 의원 47명의 서명을 받은 뒤 이를 김진표 원내대표에게 전달했다. 당 지도부이면서 협상파로 분류되는 김 대표에게 '당론을 고수하라'는 모종의 압박을 가한 셈이다. 이 작업은 정범구 의원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날 회동에는 정 최고위원과 정 의원을 포함해 천정배ㆍ조배숙 최고위원, 박지원 전 원내대표, 이미경ㆍ이종걸ㆍ김상희ㆍ김영록ㆍ김재윤 의원 등이 참석했다. 정 최고위원 측은 "손학규 대표 등 주요 당직을 가진 의원들이나 거명을 꺼리는 지지자까지 합치면 60여명이 성명서에 담긴 원칙에 공감한다는 뜻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초 여야 합의처리를 주장한 민주당 내 협상파 의원이 45명에 달한다고 알려진 점을 감안하면 이른바 강경파와 협상파 숫자의 합이 민주당 전체 의원인 87명을 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이에 대해 정 최고의원은 "당내 협상파가 45명 있다고 하는데 알아보니 아니다. 실체가 없다"며 "구두서명을 받았다는데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표적 협상파인 김성곤 의원은 전날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의총에서 강경ㆍ온건 의견이 반반이었다지만 실제 말 못한 온건파가 수에서 우위에 있다"고 말했다. 각자가 세력확대를 위해 숫자를 부풀리는 등 아전인수격 해석으로 당내 내홍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나라당의 강행처리시 실력저지에 나설지 여부에 대해서도 양측의 입장이 갈리면서 민주당 내 자중지란(自中之亂)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당 지도부는 한나라당이 강행처리에 나설 경우 모든 민주당 의원이 참석해 실력저지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반면 협상파는 여전히 '몸싸움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협상파 측의 한 중진의원은 "지금까지 몸싸움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고 한미 FTA에 관해서도 입장변화가 없다"며 "여야가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묘안을 찾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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