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길을 잃다

실질금리 마이너스에도 은행 정기예금 등에만 맴맴 '눈치보기' 계속



돈이 갈 길을 잃고 있다. '식물 기준금리'와 밀려드는 외국인 자금으로 형성된 장기 저금리 속에서 돈이 뚜렷한 방향성을 찾지 못하는 셈이다. 물가를 반영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치닫는데도 오히려 금리 매력이 떨어지는 은행을 자꾸만 찾고 그것도 단기 정기예금으로 달려가는 비틀린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선진국의 양적완화와 미국 중간선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이 줄줄이 걸려 있어 방향성 자체를 진단하기 힘든 안갯속 상황(한국은행 핵심관계자)"이 돈의 불안정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2일 한은에 따르면 계속되는 저금리 속에서도 은행 정기예금과 수시입출금식예금(MMFㆍMMDA) 등으로 돈이 옮겨지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MMF의 경우 지난 9월 5,000억원 감소에서 10월에는 오히려 1조1,000억원 증가로 돌아서면서 5개월 만에 가장 크게 늘어났다. 은행을 찾는 발걸음이 부쩍 늘어 예금은행의 실세총예금(요구불예금+저축성예금)은 10월1일부터 27일까지 14조143억원 늘어 전달보다 세 배가량이나 증가했다. 국민ㆍ신한ㆍ우리은행 등 3개 시중은행의 정기예금은 최저 2% 후반의 초저금리 속에서도 10월 말 현재 281조3,788억원으로 전달보다 8조4,857억원이나 급증해 증가액 기준으로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최근에는 정기예금에 가입하는 기간도 상대적으로 계속 짧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6개월 미만의 단기 정기예금이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돈이 이처럼 은행으로 모이는 반면 주식시장과 부동산에 대한 확신은 여전히 떨어지고 있다. 증시에서는 주가가 1,900포인트 위로 단기간에 올라서면서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다소 주춤해지는 모습이다. 주식형 펀드는 10월 1조6,343억원이 빠지며 환매행진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저금리가 계속 이어지는 와중에 선진국의 양적완화를 앞두고 이른바 눈치보기형 투자 패턴이 이어지고 있다"며 "증시는 추가 상승을 낙관하기 힘들고 부동산에 대한 기대도 아직은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자금의 불균형이 심해지는 듯하다"고 전했다. 한은 핵심관계자도 "유동성 자체에는 여유가 있지만 마이너스 실질금리에도 단기 정기예금을 찾는 굉장히 불안한 상황"이라고 현 금융시장을 진단한 뒤 "대형 이벤트가 줄줄이 있어 방향성도 진단하기 힘든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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