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 발언 의미·전망

그린스펀 발언 의미·전망 美 경기침체 막기 추가 금리인하 예고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25일 미 상원 예산위원회 증언에서 예상치 못했던 용어가 두 개나 등장했다. 애매한 화법으로 유명한 그린스펀 의장이 이날 미국 경제성장률이 '제로수준(close to zero)'에 접근했다고 한 부분과 '경기침체(recession)'란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그린스펀 의장은 현재 미국 경제가 제로성장률에 근접했으며 소비심리가 위축될 경우 더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도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제로성장 또는 경기침체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대통령이라는 그린스펀 의장이 현재 제로성장 상태에 놓여있다고 자인한 것이다. 물론 그린스펀 의장은 미국 경제가 한분기 정도 침체양상을 보이다가 회복되는 V곡선을 그릴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앞으로 3개월후면 제로성장을 불러오고 있는 '과잉재고'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 경기를 빠른 시일 내에 회복시킬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나타낸 것이다. 그는 또 여전히 미국 노동자들의 생산성은 높은 수준이며 인플레 압력은 미미한 편이라면서 미국 경제가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가 1ㆍ4분기중에는 제로성장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지만 빠르면 2ㆍ4분기부터, 늦어도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되는 V자형을 나타낼 것이라는 게 그린스펀의 전망인 것이다. 이 같은 그린스펀의 발언에 따라 골드만 삭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빌 더들리, 크레디스위스퍼스트보스턴(CSFB)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닐 소스 등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오는 30~31일 열릴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5%포인트의 추가 금리인하가 단행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소비심리 위축이 가속화될 경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마저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3개월 후에 과잉재고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본 그린스펀의 발언에 무게를 둔 해석이다. 소비심리 위축을 막기 위해선 FRB가 선제적인 금리정책을 공격적으로 구사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FRB는 지난 3일 전격적으로 임시 전화회의를 소집, 금리를 0.5%포인트 내렸었다. 이에 따라 이날 미 국채시장에서 국채수익률은 0.04~0.07%포인트씩 급락했다. 또 2월물 연방기금 선물금리도 현재 연방기금금리인 6%보다 0.45%포인트 낮은 5.55%를 기록, 채권딜러들이 0.5%포인트 금리인하를 내다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린스펀 의장은 금리정책에 대해서는 "(FOMC의) 동료들의 생각을 들어봐야 한다"며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이와 관련, FOMC위원들의 최근 발언은 다소 엇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FRB)총재인 잭 귄은 주초 앨러버머대학 강연에서 "올해 미국 경제는 3%수준의 성장을 기록할 것이고 이는 그 어느 때와 비교하더라도 매우 좋은 모습"이라고 말해 금리인하폭이 0.25%포인트에 머물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했었다. 반면 세인트루이스 FRB총재인 윌리엄 풀은 "FRB는 가능한 한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켜줘야만 정책효과를 최대로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시장은 0.5%포인트 금리인하를 강력히 기대하고 있다. 또 하나 예상치 못했던 용어인 '경기침체'는 조지 W. 부시대통령의 감세정책을 조건부로 지지하면서 등장했다. 대규모 감세정책을 채택했던 포드 행정부시절 경제참모로 일했던 그린스펀 의장은 감세정책이 경기둔화를 막을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며 당시 감세정책이 타이밍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경기침체가 진행되고 있거나 끝나가는 시점에는 감세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감세정책을 쓸려면 경기침체가 시작될 때 즉각적으로 동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린스펀은 재정흑자를 일차적으로 정부부채 상환에 사용해야 하지만, 현재 재정흑자가 예상보다 큰 규모로 축적되고 있어 정부부채 상환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이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감세정책도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이라며 부시의 감세정책을 중립적으로 지지했다. 그는 특히 감세정책의 실행시기는 빠를수록 좋다고 충고했다. 경제이론가라기 보다는 현실적인 정치감각이 뛰어난 균형잡힌 행정가라는 평을 듣고 있는 그린스펀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뉴욕=이세정특파원 bob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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