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해외건설 '1조달러 골맛'을 보자


필자의 한 지인은 원조 역(逆)기러기 아빠다. 화상통화는 물론 인터넷 전화도 없던 1980년대 초반 열사의 사막 중동에서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견디며 '건설 한류'의 초석을 다진 전문 건설인이다. 간혹 그를 만날 때면 그 시절 추억담을 쉴 새 없이 쏟아내며 자긍심을 드러내곤 한다.

1965년 태국 파타니-나라티왓 도로 공사로 해외 건설에 첫발을 디딘 우리나라는 최근 해외 건설 수주(누계) 5,000억달러 돌파라는 쾌거를 달성, 반세기 만에 해외 건설 강국으로 도약했다. 세계 곳곳에서 불철주야 땀 흘리며 일한 우리 건설인들의 열정과 도전정신 덕분이다.

수출신용기구 역할 중요해져

최근 5년간 해외 건설 수주액은 약 3,000억달러로 전체 수주액의 절반이 넘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더딘 회복세를 보이는 글로벌 경제상황에서 일궈낸 성과라 더욱 값지다. 건설은 자동차ㆍ반도체와 더불어 '수출 대한민국호(號)'의 든든한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제2의 중동 붐이 건설업계의 화두로 떠올라 해외 건설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도 크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변화무쌍한 글로벌 시장 여건 때문이다. 중동을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의 대형화, 남미ㆍ아프리카 등 새로운 시장의 급부상에 따른 시장 다변화, 중국ㆍ터키 등 신흥 건설 강국의 등장 등 해외 건설 분야의 패러다임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 해외 건설공사 패러다임이 EPC(EngineeringㆍProcurementㆍConstruction) 위주의 도급사업이었다면 지금은 사업 개발 단계부터 운영까지 기업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투자개발형 사업, 사회 기반시설 건설을 위한 민관협력사업(PPPㆍPrivate Public Partnership)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 EPC 계약 수주를 넘어 오는 2014년까지 해외 건설 5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삼은 우리 기업들로선 기회인 동시에 풀어야 할 난제다. 요즘 글로벌 건설 시장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선(先)금융 후(後)발주' 방식을 취한다. 이렇다 보니 수출입은행과 같은 수출신용기구(ECA)의 역할이 사업 성공의 관건이라 할 만큼 중요해지고 있다. 자국 기업의 선전을 위한 ECA 간 경쟁은 '총성 없는 전쟁'에 비견될 정도다.

수출입은행은 1976년 설립 이후 36년간 특화된 전문인력과 광범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수출 기업의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다음달 1일 창립 36주년을 맞아 프로젝트 발굴 및 금융자문ㆍ주선 업무를 전담하는 금융자문실을 대폭 확대하는 등 은행의 조직 개편도 단행할 예정이다. 이는 모두 해외에서 활약 중인 우리 기업의 후방을 수출입은행의 경쟁력 있는 금융 제공으로 견실하게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기업·정부 팀워크 갈수록 중요

'창업이수성난(創業易守成難)'이란 말이 있다. 당나라 태종 때 현학 위징(魏徵)이 한 말로 '업적을 이루기는 쉬우나 이룬 바를 지키고 발전시켜나가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해외 건설 수주 5,000억달러를 넘어 명실상부한 건설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해외 건설업계의 수주 경쟁은 개별 기업의 사업 수행 능력은 물론이고 외교력, ECA의 금융 제공능력까지 견주는 국가 대항전으로 변화한 지 오래다. 우리 기업의 자기 혁신, 정부 및 관련 공공기관의 정책적 지원에 국민적 성원이 더해져 환상의 팀워크를 이뤄낸다면 해외 건설 A매치에서 수주 1조달러의 골 맛을 볼 날도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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