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7월9일] 황금의 십자가


1896년 7월9일 시카고,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 J. Byran)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어디에 설 것입니까. 돈을 가진 나태한 자본가 편입니까, 대중의 편입니까?’ 들끓기 시작한 대회장의 열기는 마지막 연설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금본위제도 추종자들에게 요구합니다. 노동자의 이마를 가시 돋친 면류관으로 찌르지 마십시오. 인류를 황금의 십자가에 못박으면 안됩니다.’ 연설이 끝났을 때 1시간 동안 이어진 2만여 청중의 박수갈채는 이변으로 이어졌다. 현직 대통령인 클리블랜드를 제치고 무명이자 36세에 불과한 브라이언이 대선후보로 뽑힌 것. 명연설로 손꼽히는 그의 연설 배경은 자유 은행주의. 풍부한 은을 돈으로 만들면 농산물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자유로운 은화 주조권을 요구한 농민과 광산주, 서부지역의 염원을 안고 대선에 뛰어든 그는 남부와 서부를 석권했으나 인구가 많은 동부를 놓쳐 대권을 공화당의 매킨리에게 넘겨줬다. 미국 대선 사상 처음으로 전국 순회유세를 선보였던 그의 패배는 사회의 주도권이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넘어가고 금융시스템이 분권형ㆍ주권(州權)형에서 중앙집중형으로 바뀌는 흐름을 가속시켰다. 1913년 연방준비은행(FRB)법이 마련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브라이언은 2번 더 대권에 도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윌슨 대통령 밑에서 국무장관을 맡고 사망 직전에는 다윈의 진화론 반대자로 이름을 남긴 정도지만 그는 경제사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재벌 규제(트러스트 파괴)에도 그의 숨결이 담겨 있다. 20세기 이후에도 브라이언의 흔적은 양대 정당에 전해져 내려온다. 급진적 경제정책은 민주당에, 사회적 보수주의는 공화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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