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11월 3일] 은행의 정보 장사

이제 휴대폰은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이동통신 서비스 권역 안에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 아이가 외출했더라도 위치확인 서비스를 이용하면 즉시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청소년들은 휴대폰을 통신은 물론 여가선용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편리함에는 불편도 따른다. 바로 자유의 제약이다. 휴대폰은 이따금 우리의 일상생활을 구속한다. 휴대폰만 있으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의 생활에 개입할 수 있다. 이런 개입으로부터 방해받지 않아야 소극적인 자유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개입으로부터 무방비 상태다. 협박성 신용정보 동의서 작성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무작위로 발송되는 단문메시지서비스(SMS)가 대표적인 사례다. 바쁜 와중에도 '혹시 중요한 내용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메시지를 확인해본 후 이내 휴대폰을 덮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런 일은 소극적 의미의 '자유의 침해'일 뿐이다. 휴대폰을 통해 그 이상의 편익을 누리기에 이런 불편은 눈감아줄 수 있다. 하지만 금융상품이나 부동산 투자를 권유하는 전화는 불쾌감은 물론 모욕감마저 안겨준다. 개인정보를 자세히 파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통화 방식도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계적인 목소리로 "자동차보험 만기가 11월15일부로 종료되니 이 상품을 이용해보라"는 식으로 속사포처럼 쏴댈 때는 '만약 옆에 있으면 한대 쥐어박아 줄 텐데…'라는 생각마저 든다. 대개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며 정중히 거절하지만 이런 제의조차 무시되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는 마치 벌거벗은 채로 테러를 당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런 불쾌한 경험 때문에 은행이나 유통업체 등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제공할 것을 요구할 때는 일단 조심스런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래서 회원으로 가입할 마음을 먹었다가도 요구하는 정보의 종류에 불만을 품고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포기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은행이다. 얼마 전부터 은행창구에서는 '개인신용정보 제공ㆍ이용동의서'를 작성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동의서를 요구하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일부 은행에서는 정중하게 "마케팅 활동을 위한 참고자료로 쓰기 위해 필요하니 협조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이 동의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은행에서 제공하는 금융 서비스를 일체 이용할 수 없다"는 협박을 늘어놓는 사례도 있다. 최근 급여 통장을 갖고 있는 은행 점포를 찾았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그 점포 지점장 명의로 발행된 10만원권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수표 뒷면에 이름, 주민등록 번호, 휴대폰 번호까지 적어 주민등록증과 함께 제시했지만 "신용정보 제공ㆍ이용 동의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현금 교환 등 어떤 금융 서비스도 이용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개인신용정보 제공ㆍ이용 동의서'와 '신용정보 제공ㆍ활용에 대한 고객 권리 안내문'을 들고 은행을 나왔다. 돈 벌더라도 신뢰 정도 지켜야 나중에 '고객 권리 안내문'을 읽어본 후 어이가 없었다. 안내문에는 "정보 제공ㆍ활용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장을 비롯한 은행 고위관계자들은 불완전 판매를 비롯한 불미스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일선에서 열심히 일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겼다"고 말한다. 하지만 열심히 해야 할 게 있고 그렇지 않아야 할 게 있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말이 좋아서 '제휴 마케팅'이지 결국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다. 돈을 벌더라도 정도를 지켜야 한다. 더욱이 은행은 신뢰를 먹고 사는 서비스업이다. 당장은 불편하더라도 신뢰를 쌓아야 한다. 정보 장사를 위해 신뢰를 무시하면 아무리 열심히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도 '화장'에 불과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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