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차입 기업' 컨트롤타워가 없다] "관리대상 아니다" 당국 뒷짐… 채권단 마저 여신 회수 급급

주채무계열서 제외되면 부실 터져도 통제 불능
제2동양사태 막으려면 구조조정 작업 유도할 별도 시스템 만들어야

"동양그룹은 지난 2010년 이후 주채무계열 선정대상 기준에 해당하지 않아 은행의 관리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30일 동양그룹 계열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직후 가진 긴급 기자회견에서 가장 먼저 한 말이다. ㈜동양∙동양인터내셔널∙동양레저 등의 계열사는 이날까지 만기가 도래한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등 시장성 차입금을 갚지 못하고 결국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행을 택했다. 최 원장이 이들 계열사의 법정관리 신청을 놓고 한 이 말 한마디는 시장성 차입 비중이 높은 부실기업을 바라보는 감독당국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한다. 최 원장은 동양이 주채무계열에서 제외된 사실 외에도 "부실경영으로 인해 과다한 시장성 차입금에 의존했다"고 언급하면서 부실의 책임을 기업에 돌렸다. 물론 감독당국의 논리 자체는 틀린 것이 없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보면 동양처럼 시장성 차입 비중이 높은 기업에 대해서는 감독당국도 손을 쓸 수 없다는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감독당국이 이러니 채권단 역시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이 없다. 오히려 채권은행들은 시장성 차입 비중이 높은 기업은 부실 우려가 큰 기업으로 보고 담보 비중을 늘리거나 기존 여신을 회수하는 등 리스크 관리에만 집중했다. 결국 시장성 차입이 높은 기업은 '시장성 차입 확대→구조조정 컨트롤타워 부재→은행들의 보수적인 여신 운용→시장성 차입 확대'라는 악순환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컨트롤타워 부재 속, 비올 때 우산 뺏는 채권단=1일 동양그룹이 비교적 우량한 계열사로 분류됐던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시장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시멘트업계 2위이자 부채비율도 200% 이하로 재무구조가 탄탄한 계열사였기 때문이다. 동양시멘트에 대해 채권단 공동관리를 검토하던 산업은행 등 채권단도 뒤늦게 법정관리 소식을 파악할 정도였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겉으로는 동양시멘트의 지원을 검토한다고 했지만 이미 산은 등 채권단은 올 초부터 동양시멘트에 빌려준 여신을 지속적으로 회수했다. 시장성 차입을 늘려온 동양그룹에 대한 위기설이 돌자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기존 대출을 회수한 것이다.

지난해 말 19억원이던 당좌차월계약은 6월 말 '0'원이 됐고 지난 6개월간 동양시멘트는 산은과 농협은행에 141억원의 단기일반대출을 상환했다. 채권단은 신디케이션론도 250억원을 상환 받았다. 대신 토지∙광물∙광업권 등 동양시멘트의 주요 자산 대부분은 담보로 잡았다. 동양시멘트가 채권단에 제공한 담보는 장부상 전체 자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담보권자는 법정관리를 가더라도 채권자 가운데 변제순위가 가장 빠르다. 그동안 감독당국이나 채권단은 동양그룹이 시장성 차입 비중이 크고 은행권 여신이 거의 없어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이미 채권단은 여신이 있는 일부 계열사에 대해서는 위기가 불거지자 적극적인 여신 회수에 나선 것이다. 채권단이 동양시멘트에 대해서는 자금지원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자금줄을 죄어왔던 당사자였던 셈이다.

◇동양 사태 반면교사…시장성 차입 기업 선제적 대응 강화해야=동양그룹은 2009년까지만 해도 주채무계열로 산은이 주채권은행이었다.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고 구조조정 작업을 추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당시 ㈜동양∙동양레저∙동양인터내셜 등 동양 계열사들은 회사채와 CP 등 시장성 차입을 꾸준히 늘리면서 금융권 여신은 2009년 말 주채무계열 선정 기준 금액인 1조3,946억원 아래로 떨어졌다. 2010년 4월 주채무계열에서 벗어났고 시장성 차입 비중은 더욱 빠른 속도로 늘었다. 이 과정에서 감독당국은 아무런 손을 쓰지 않았다. 개별 회사의 독자적인 경영판단으로 봤기 때문이다. 동양이 시장성 차입을 늘리면서 오늘날 부실을 키우는 데 당국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특히 동양그룹은 지난해부터 계속적으로 위기설이 불거진 곳이었다.

앞으로 더 큰 문제는 주요 대기업 가운데서도 시장성 차입 비중이 높은 곳들이 꽤 있다는 점이다. 최근 웅진과 STX∙동양 등 재계 30위권 안팎의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면서 벌써 시장에서는 '위험기업군'으로 불리는 기업들의 명단이 돌고 있는 상황이다.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고 있는 기업일지라도 계열사별로 회사채와 CP 등 시장성 차입 비중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우량 계열사라도 다른 부실 계열사 때문에 위기가 번질 수 있다. 동양그룹 내에서 금융권 여신이 많던 동양시멘트가 결국 시장성 차입 비중이 높은 다른 계열사로부터 리스크가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법정관리로 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조선∙해운∙건설 등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산업에 속한 기업들은 그동안 회사채 등 시장성 차입을 늘려서 영업자금을 마련해왔다. 이들 기업은 현재 회사채 신속인수제 참여, 유상증자, 영구채 발행 추진 등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언제든지 제2의 동양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내포돼 있다. 감독당국이나 채권단이 시장성 차입이 많다는 이유로 기업 구조조정에 손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금융권 여신이 없는 기업에까지 은행을 통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동양 사태를 계기로 시장성 차입 비중이 높은 기업에 대해서도 주채무계열 선정 기준을 강화하는 등 대안마련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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