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맹첩중 세번째 그림-적설만산(積雪滿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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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 이한철이 그린 추사의 초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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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년 조선 순조 9년 늦가을. 스물넷의 청년 김정희는 양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청나라 수도 연경에 도착한다.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임명받은 아버지를 따라간 유학길. 당시 청나라에서는 비석에 쓰인 글을 연구하는 비학(碑學)과 조형미를 강조하는 서예 신 이론이 등장했다.
김정희는 그곳에서 새로운 이론을 주창했던 금석학자 옹방강(翁方綱)과 만난다. 김정희의 뛰어난 학예가 이미 중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던 터라 일흔 일곱의 석학 옹방강은 첫 만남에서 김정희의 학문적 깊이에 빠져들게 되고, 김정희는 청나라 학자라면 누구나 가보고 싶어했던 옹방강의 서재를 마음대로 드나들게 된다. 추사체(秋史體)가 완성되는 운명적인 순간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50주년이 되는 올 가을 추사(秋史ㆍ1786~1856)를 기리는 특별전이 곳곳에서 열린다. 간송미술관이 마련한 '추사 150주기 기념특별전'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추사 김정희: 학예 일치의 경지'가 대표적이다. 인문학의 위기가 높은 요즈음 금석학ㆍ불교ㆍ시문학ㆍ그림 등 다방면에 업적을 남겼던 추사의 학문적 깊이가 더욱 빛을 발한다.
우리문화 유산의 보고(寶庫)로 불리는 간송미술관은 추사체 형성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받은 대표작 100여점을 15일부터 2주간 선보인다.
추사 관련 작품만을 모은 이번 전시는 말 그대로 '백문이 불여일견'. 추사가 30대에 쓴 글부터 70세 봉은사에 머물면서 쓴 절필(絶筆)까지 시대별 대표작이 모두 나온다. 또 스승 옹방강의 글씨, 친구이면서 평생 곁에서 그의 글을 모방했던 권돈인(1783~1859)의 글씨 등 추사체의 맥을 이어온 작품 이 실로 다양하다.
전시에는 현존하는 추사 글씨 중 가장 큰 것인 '명선(茗禪ㆍ차를 마시며 선정에 들다)' 대형 예서 '사야(史野ㆍ세련되고 조야한 멋)' 등이 선보인다. 추사가 가장 많이 그렸던 난(蘭) 그림도 다수 소개된다. 추사의 난초화 23점을 모은 난맹첩(蘭盟帖)과 친구 신위가 그린 '노죽(露竹)' 등 그의 대표작과 추사의 예술세계에 영향을 받은 작가의 작품이 나란히 걸린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는 ▦금석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비석의 의미를 규정하려던 추사의 노력이 깃든 비석 탁본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편지 ▦도록으로 만 알려졌던 전서ㆍ예서ㆍ해서 등 모든 서체필법이 담겨 있는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세한도(歲寒圖) 발문 전체 ▦초의선사에게 보낸 편지첩 등이 선보인다.
이 밖에도 삼성미술관 리움은 19일부터 '조선말기 회화전'에서 추사실을 별도로 만들어 보물 547호 반야심경첩과 '죽로지실(竹爐之室)' 등 소장품 일부를 전시한다.
30여년간 추사를 연구해온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청나라에서 이론에 머물렀던 신서예를 추사체로 완성, 중국을 놀라게 한 그는 요즘으로 치면 글로벌 지식인인 셈"이라며 "선조들이 외래 문명을 받아들여 본토 것보다 더 수준을 높이면서 문화적 자존심을 유지했듯, 우리가 서구문화를 능가하려면 받아들인 문화의 맥을 짚고 그 위에 우리 전통을 보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