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중앙광장(옛 남산식물원 자리) 일대는 일제의 한반도 침탈을 상징하는 곳이다. 일제는 한양공원 조성(1910년)과 조선신궁 건립(1925년)을 위해 남산을 칼로 도려내듯 잘라내고 넓은 대지를 만들었다. 일제는 조선인들의 조선신궁 참배를 강요하고 일본이 조선에 문명을 가져왔다고 선전하며 식민정책의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 과정에 600년 조선왕조의 상징과 같았던 한양도성 777m는 사라졌다. 해방 후 조선신궁을 헐리고 동ㆍ식물원 분수대가 설치됐고 이어 중앙광장이 됐다. 일제가 흔적도 없이 훼손했다고 여겨졌던 조선신궁터 한양도성이 100년 만에 땅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14일 서울시는 남산 중앙광장 일대 한양도성 유구(옛 토목건축 구조를 알 수 있는 흔적)를 공개했다. 3~4m 깊이로 판 구덩이 속으로 층층이 쌓여 있는 하얀 화강암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언뜻 보기에도 성곽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고스란히 보존돼 있었다.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기저부와 성체는 곳에 따라 4~5단인 곳과 6~7단인 곳도 있었다.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정확한 축성시기는 전문가의 의견을 물어 밝혀 낼 계획이라고 서울시는 설명했다. 한양도성 옆으로 조선신궁의 잔재로 보이는 특이한 콘크리트도 확인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양도성 성곽 추정선을 따라 3곳을 먼저 시굴 조사한 결과 한양도성의 유적구조가 모두 확인됐다"며 "경성ㆍ용상시가도 등 기록으로만 있고 잊혀졌던 회현자락의 한양도성이 10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밝혔다.
일제는 성곽을 헐어 돌의 일부를 공원이나 신궁 등에 활용하기도 했다. 깊이 3~4m를 파고 들어야 성곽의 기저부가 드러날 정도로 일제는 대규모의 흙을 갖다 덮는 만행을 저질렀다.
오해영 서울시 푸른도시국장은 "이번 발굴조사는 일제가 신궁 건립으로 한양도성을 대규모로 훼손한 역사적인 장소인 만큼 발굴 의의가 크다"며 "아픈 역사지만 확인된 유적구조를 고스란히 보존ㆍ정비해 국민들이 바른 역사관과 애국심을 갖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시굴조사를 한 3곳 모두에서 한양도성의 유적구조가 확인된 만큼 앞으로 발굴하는 구간에도 성곽이 땅속에 보존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게 되면 서울시가 추진 중인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시는 2009년부터 한양도성 복원을 위한 남산 회현자락 정비사업을 3단계에 걸쳐 추진해왔다. 1단계로 힐튼호텔 앞 아동광장 일대 성곽 84m, 2단계로 백범광장 일대 성곽 245m에 대한 복원사업을 마무리했다. 이번에 시굴한 곳은 3단계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