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Story] 강명주 지지옥션 회장

"미쳤다는 얘기 많이 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참 잘한 일"
세상에 처음 정보지 만들겠다고 했을 때
모든 경매물건에 등기부 등본 실었을 때
이미 망한 정보지 다 인수한다고 했을 때



1만2,724호. 1년 365일 쉬지 않고 하루에 한 부씩 간행해도 34년 10개월이 걸리는 분량. 지난 1983년 '계약경제일보'라는 문패를 내건 후 꼬박 31년이 지난 지지옥션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는 숫자다. 이 1만2,724번째 경매 정보지 맨 뒷장에는 잉크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붓글씨체로 쓰인 편지가 인쇄돼 있다. 강명주(사진) 지지옥션 회장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다. 편지는 "미친 사람 미친 얘기 들어보소"로 시작된다. 스스로 미쳤다고 자임하는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최근 강 회장을 만나러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 10번 출구를 나오자 지은 지 20여년이 넘은 갈월동 지하차도가 앞에 놓여 있다. 좁고 어두운,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지하차도 중 하나다.

그 길을 걷자니 강 회장의 특이한 프로필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는 고려대 학보에 200회를 넘긴 시사만화 '타이거(Tiger)'를 그리다가 철창 신세도 몇 번 졌다. 유명세로 국무총리를 지냈던 고(故) 김상엽 총장이 직접 학보사 간사로 발탁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1년 만에 박차고 나와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다 엉뚱한 경매업계에서 일가를 이뤘다. 그가 보낸 70여년의 세월 역시 길 끝에 비치는 햇살을 향해 걷지만 삶의 무게 탓에 고개를 숙이면 어둠만 보이는 이 좁은 길 같진 않았을까.

폭 2m, 길이 50여m의 지하차도 보행로를 나오자 환한 햇살과 함께 지지옥션 간판을 단 7층 높이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백발이 성성해 옆집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지만 말투에선 여전히 호방함이 문득문득 새어 나오는 강 회장의 인생역정을 만나본다.

#1 빈손으로 서울 유학 온 촌놈… 굴곡진 학창시절

경상북도 울진 죽변면 출신의 자칭 '촌놈'인 강 회장은 17세에 서울로 올라왔다. 그는 "중학교에서 서울에 있는 경기고에 입학하면 등록금을 대준 다길래 시험을 치러 서울에 처음 올라왔다"며 "서울 가는데 하루가 넘게 걸리고 또 한 번 갔다 오면 어깨에 힘을 줬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는 불합격. 학비 마련이 막막해지자 선택한 것이 야간상업고등학교였다. 덕수상고와 보인상고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입학한 곳은 영락교회가 운영했던 영락고등공민학교였다.

"당시 공민학교라고 하면 사정이 어려운 이들이 졸업장을 따기 위해 오던 학교입니다. 졸업장 하나만 따려고 간 학교인데 공부를 했겠습니까. 중학교 때만 해도 100점씩 맞고 그랬던 터였습니다. 50~60점 맞으려고 답을 써낸다는 게 자존심이 상해 시험지에 이름만 써내다 보니 성적이 60명 중에 59등이었죠. 시험을 아예 안 봤던 친구를 제하면 사실상 꼴등입니다."

옛 상념에 젖어 '허허' 웃음을 토해냈던 강 회장의 입에서는 곧장 인생 반전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3학년에 올라갈 무렵 학교에서 실시한 IQ 테스트에서 140점을 받게 된 것.

강 회장은 "꼴등이던 놈이 아이큐가 140이라니까 사연을 묻길래 사정 설명을 했더니 그때부터 공부를 시키더라"며 "그렇게 해서 영락공민학교 최초로 고려대에 입학하게 됐다"고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2 실패 또 실패… 필연과 우연의 만남

대학 입학 당시만 해도 그의 꿈은 고향에서 소박한 목장을 꾸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과도 축산과였다.

하지만 학창시절 시사만화 '타이거(Tiger)'로 고대신문과 인연을 맺으면서 꿈은 급선회한다. 강 회장은 "시사만화를 그리면서 유명해지다 보니 졸업할 때 당시 김상엽 총장이 직접 학보사 간사로 나를 채용했다"며 "그때부터 신문을 만드는 것을 내 인생의 '필연'이라고 생각하게 됐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자유분방했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을까. 결국 그는 1년간의 조직생활을 박차고 나와 꿈과는 다른 길인 석유곤로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처가의 돈까지 끌어모아 크게 벌인 사업은 30억원이라는 엄청난 빚만 남겼다.

"빚쟁이들을 피해 파주 공장으로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처가를 찾을 낯도 없었고요. 큰 애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여기저기 길거리를 쏘다니며 어떻게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할지 궁리만 했었죠. 다방도 차려봤는데 그게 또 사기를 당한 겁니다. 그러다 우연하게 경매정보를 팔면 돈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고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 최초의 경매 정보지를 만들게 됐죠."

그는 자신의 성공 원인을 두고 '필연과 우연의 만남'이라고 간략히 설명했다. "신문을 만들고 싶었고 그러다 우연히 경매라는 분야를 알게 됐습니다. 그전에는 순전히 우연으로만 돈 될 궁리를 찾다가 실패만 맛봤죠. 평생 꿈꾸는 게 있다면 분명 우연은 찾아오고 그 둘이 만나면 결국 성공할 수 있다는 게 내 인생의 지론입니다."

#3 '정보 공유·상품 제일'로 이룬 경매 대중화

필연과 우연이 낳은 길이었다지만 성공이라는 목표까지 닿는 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혈혈단신으로 남이 쓰는 사무실의 책상 하나를 빌려 사무실을 차렸습니다. 마누라와 둘이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가서 갖은 방법을 동원해 열람정보를 베껴왔죠. 경매계 직원의 방해로 쉽진 않았지만 어떻게든 경매 정보를 다 적어 내놔봤더니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좋은 겁니다. 당시만 해도 큰돈이었던 1,000원으로 가격을 매겼는데도 잘 팔리더군요. 그게 계약경제일보의 첫발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경매는 불쌍한 이들에게서 집을 뺏는 야비한 행태로 인식됐다. 소위 '경매꾼'들이 정보를 독점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브로커들은 경매계 계장에게 뒷돈을 주는 형식으로 사전에 경매정보를 빼돌렸고 그렇다 보니 역설적으로 집주인들이 헐값에 집을 팔게 되는 일들이 빈번했다.

그는 "입찰정보가 한 사람의 손에만 들어가게 되면 유찰을 통해 감정가격의 50%에도 낙찰을 받을 수 있다"며 "당시 브로커들이 다 그런 식으로 돈을 벌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강 회장이 이들이 빼돌린 정보를 정보지에 싣기 시작하면서 일어났다.

"브로커들이 죽인다는 협박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돈으로 회유하기도 합디다. 돈 앞에 혹했던 적도 있지만 이미 앞선 실패에서 품질이 상품의 생명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던 터라 결국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정보가 좋으니 구독도 늘어나고 우리 정보를 베끼는 경쟁업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죠. '미친 짓'이라고 할 만큼 상품에 투자하다 보니 어느덧 최고가 돼 있더군요."

#4 악수가 묘수로… 자산운용으로 새 영역 개척

인생의 고비마다 그가 뒀던 '수(手)'들은 뭇사람들에게 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마 4단에 이르는 바둑 실력 탓일까. 결과적이지만 '악수(惡手)'는 '묘수(妙手)'가 됐다.

"미쳤다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정보지 없는 세상에 정보지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광고 없는 신문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모든 경매물건 정보에 등기부 등본을 싣는다고 했을 때, 선불제로 전환하겠다고 했을 때, 망한 정보지를 다 인수한다고 했을 때. 돌이켜 보면 너무 잘한 일들입니다."

강 회장은 최근 경매정보 제공업에서 자산운용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지지옥션의 경매정보와 자산운용을 접목해 경매펀드의 새 지평을 열겠다는 게 그의 남은 포부다.

"어쨌거나 나는 미쳤소이다." 그의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 강명주 회장은




△1942년 경북 울진

△고려대 축산과·경영대학원

△명지대 정보대학원 객원교수

△계약경제일보 대표

△현 지지옥션 회장 및 지지자산운용 대표













국내 첫 경매정보 담은 '계약경제일보'로 출발
물건마다 등기부 등본·현장 보고서까지 제공




● 지지옥션은




지지옥션(GG Auction)의 모체는 1983년 창간한 '계약경제일보'다. 정보지가 전혀 없던 시절 최초로 경매정보를 담은 간행물을 발행한 매체다. 계약경제일보는 지금도 신문협회에 등록돼 있다. '지지(GG)'라는 이름은 이 계약경제일보의 영문 첫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경매정보 제공업계의 맏형이라고 할 수 있는 지지옥션은 정보지에 업계 최초로 각 물건의 등기부 등본을 제공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지난 31년간 생성한 경매정보는 280만건이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찍어낸 정보지는 1만2,726호까지 발행했다. 현재 전국의 경매 정보를 오프라인으로 발행하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지옥션뿐이다.

각각 물건 정보에는 등기부 등본을 비롯해 감정평가서·현황조사서·건축물대장·토지이용계획확인원·전입세대열람 등을 포함해 현장방문으로 기록된 생생한 보고서도 함께 제공된다.

또 새로운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는 부실채권(NPL) 물건을 직접 매입할 수 있도록 상세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지지옥션의 경매정보를 받아보는 이들이 오프라인에 7만1,922명, 온라인에 16만9,606명에 달한다. 이렇다 보니 우수 콘텐츠 등을 인정받아 2005년 우수벤처기업, 2006년 기술혁신 중소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7년엔 업계 최초로 경매부동산 분석보고서 생성 시스템으로 특허를 획득했다.

지지자산운용은 31년 전통을 접목한 지지옥션의 새로운 도전 사업이다. 특수권리 전문 변호사와 경매 전문가, 컨설팅 회사 등 부동산 관련 경험을 쌓은 전문 인력이 전체의 50%가량이다. 적합한 문건을 찾고 권리분석과 문제 해결에 능한 전문가들이 '취득→관리→처분'의 과정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 책임 있는 운용이 가능하다는 게 지지옥션 측의 설명이다.

설립한 지 4년이 된 지지자산운용은 현재까지 12개의 펀드를 조성해 운용하고 있다. 매각 차익이 예상되는 실물부동산을 경·공매(3개)와 일반매입(5개) 등을 통해 취득한 수익형 부동산펀드다. MBS(모기지담보부증권)펀드도 3개다. 최근에는 NPL(무수익여신)펀드도 출시해 운용하고 있다.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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