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현대 정몽구회장] 기아자인수 공헌 차기대권 예약

올해 재계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곳이 현대그룹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현대그룹내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은 사람은 지난 3일 연간 매출 20조원규모의 공룡기업인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의 경영권을 거머쥔 정몽구회장.鄭회장은 올해 환갑을 맞았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아들이라는 선입관때문에 환갑을 맞았다는데 놀라는 사람들이 많지만 鄭회장은 이미 30년넘게 경영 일선을 지켜왔다. 그동안 앞에 나서지 않고 묵묵히 일만 해온 과묵한 성격때문에 鄭회장의 대외이미지가 그만큼 약했을 뿐이라는 얘기다. 鄭회장의 진가는 기아자동차 인수과정에서 입증됐다. 지난 10월 현대의 기아차인수가 결정됐을 때 재계에서는 『MK(정몽구회장의 영문 이니셜)의 뚝심이 발휘됐다』고 탄성을 질렀다. 鄭회장은 지난 96년 그룹회장에 취임한이후 한때 경영능력이 구설수에 올라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기아인수과정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현대그룹의 차기 총수로 자리잡았다. 鄭회장이 그룹의 최대 핵심사업인 자동차 부문을 총괄하게 된 것은 「포스트 정주영체제」가 MK중심으로 가닥이 잡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동안 정몽헌 회장과 함께 투톱시스템의 한 축이었던 鄭회장이 자동차관련 7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자동차소그룹을 총괄함에 따라 명실상부한 회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룹전체의 무게중심이 MK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 정몽헌 회장이 현대전자·현대건설 등 대형 계열사에다 LG와의 반도체협상을 주도하고 금강산 관광사업까지 거머쥐면서 경영대권이 몽헌회장쪽으로 기우는 것이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이 무성했었다. 하지만 정몽구회장의 자동차사업 접수는 일거에 역전홈런을 날린 셈. 현대 관계자는 『왕회장이 유교적 가풍을 중시하는 점을 고려할 때 장남이 후계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鄭회장의 경영철학은 「가치경영」. 기업이 이익을 내야 종업원이 잘 먹고 살 수 있으며 그 이익이 사회에 환원된다는 것이다. 또 경영에 투명성과 합리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또 해외경영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해외시장은 뚫으려고 노력하면 언제든지 개척할 수 있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鄭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통이 큰 인물이다. 과묵하고 후덕한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진 그는 자신을 밖으로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일단 맡은 일은 누구보다도 강한 집념과 추진력으로 밀어부치며 일등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유교적인 가풍속에서 성장한 鄭회장은 위로는 어른들을 받들고 아래로는 형제들을 자상하게 이끌어갈 뿐만 아니라 주위사람들에게는 신의로 대해 한번 인연을 맺은 이와는 오랜 세월을 같이 한다. 10여년전 가장 절친했던 고교동창인 법조계인사가 불의의 사고로 타계하자 지금까지 미망인과 유족들을 뒷바라지하고 있는 것도 그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鄭회장은 아랫사람들에게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며 『한번 실수를 하면 큰 질책을 당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 사람에게 만회할 기회를 준다』고 평했다. 말이 어눌하기로도 유명하다. 아는게 많다보니까 말이 머리를 못따라 가서 말이 잘 안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기자회견때는 기자들을 곤혹스럽게 하기 일쑤다. 그러나 정감이 있고 섬세한 사람이라고 측근들은 전한다. 편할 때는 옛 시조도 읊고 가까운 친구와 소주잔도 기울이는 낭만을 가지고 있다고. 20여년이상 측근에서 일한 한 관계자는 『5~6년전까지만 해도 호랑이라고 불릴만큼 엄했다. 그러나 그룹회장이 된 이후에는 아랫사람들을 자애롭게 대한다』고 말했다. 회사경영을 시작한 이래 그는 회사와 집밖에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정·재계에 교류폭이 넓지 못하다. 최근들어 전경련회장단모임에도 자주 얼굴을 내밀면서 대외활동을 늘려나가고 있다. 「갤로퍼 신화」를 이끌어 낸 鄭회장의 자동차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자동차와의 인연은 鄭회장이 지난 70년 현대건설에서 현대자동차로 전입해서 자동차부품과 자재, 영업을 담당하면서부터. 그후 74년 현대자동차써비스의 경영을 직접 맡으면서 자동차경영자로서의 능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했다. 자동차는 기술과 품질도 중요하지만 아프터서비스가 자동차 판매에 직접적이고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한 鄭회장은 원활한 부품공급과 신속한 정비서비스를 위해 전국을 대상으로 서비스망을 구축했다. 특히 자동차정비에 있어서 기업이윤보다는 고객의 만족을 더 중시하는 경영이념은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각종 정비제도의 시행을 통해 국내시장에 고객중심의 자동차정비문화를 정착시키는데 기여했다. 현대정공회장시절 시장에 첫 선을 보인 갤로퍼는 불과 5개월만에 국내 4륜구동 분야 판매 1위를 차지하며 최다히트상품으로 선정되는 돌풍을 일으켰다. 이는 일찍이 선진국의 자동차 시장이 다목적차량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을 간파한 鄭회장의 시의적절한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자동차에 대한 열의는 신차개발과정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틈나는 대로 경기도 용인에 있는 현대정공 기술연구소를 방문해서 개발담당자들과 함께 시험제작 차량을 점검하곤 한다. 이때 鄭회장은 차량부품의 기능·성능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차량개발 전문가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 담당자들이 혀를 내두르게 했다. 그는 양궁애호가로도 유명하다. 85년부터 12년동안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으면서 당초 비인기종목으로 국민의 관심밖에 있던 한국양궁을 명실공히 세계최강의 위치로 올려놓았다. 양궁선구 조기육성, 양궁연습기 개발·보급, 전국 각지에 양궁장 신설 등 한국양궁의 저변확대와 과학화를 위해 鄭회장이 실천한 헌신적인 노력은 올림픽 3연패라는 값진 결실로 돌아왔다. 鄭회장은 경복고와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거쳐 미국에서 2년동안 경영학을 공부하고 귀국, 69년 현대건설에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그룹에 발을 들여 놓았다. 鄭회장은 매일 아침 6시50분까지 한남동자택에서 계동사옥 14층 회장실에 출근한다. 그는 96년 1월 그룹회장이 된 이후 비로소 계동사옥의 정문을 통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동안 그는 후문으로 드나들었다. 권위적으로 비칠만큼 위계질서가 엄격한 현대그룹의 이미지에 걸맞게 조심스럽게 처신해온 것이다. 鄭회장이 현재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목표는 기아자동차를 3년안에 정상화시키는 것. 30년동안 경영을 하면서 쌓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고 있다. 鄭회장의 행보에 재계의 눈과 귀가 모두 쏠리고 있다.【연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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