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 수난 시대

억대 연봉으로 만인의 부러움을 사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요즘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야 할 판이다. 소신을 가지고 기업분석을 한 보고서가 회사이익에 반하거나 제도에 위반된다고 회수당하는 경우가 빈발하기 때문이다. 최근 H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주가에 대한 부정적인 리포트를 냈다가 1시간여 만에 회수당하는 곤욕을 치렀다. 회사 영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회수 이유였다. 지난 21일에도 분석 리포트가 회수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D증권의 애널리스트가 '공모인수 증권사는 해당기업에 대한 분석 리포트를 낼 수 없다'는 제도가 만들어진 것을 모른 채 무심결에 공모를 받은 기업을 분석한 리포트를 냈다가 부랴부랴 이를 수거했다. 가뜩이나 UBS워버그증권의 보고서 파문 이후 애널리스트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애써 만든 보고서마저 잇따라 회수당하는 사태가 연출되자 애널리스트마다 "보고서를 내기가 겁이 난다"고 푸념한다. 더욱이 감독당국이 애널리스트에 대한 관리ㆍ감독을 계속 강화해 일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자 아예 펀드매니저로 직업을 바꾸려는 애널리스트들도 생겨나고 있다. '증권가의 꽃'으로 불리며 각광 받던 애널리스트들의 체면이 이렇게 구겨진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태생적 한계가 근본이유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처럼 대기업집단의 계열사인 증권사는 계열사 눈치보기에 바쁠 수밖에 없고 애널리스트들 역시 윗분(?)의 심기를 살필 수밖에 없다. 수익성이 높은 법인영업을 강화하기 위해선 대기업이나 기관투자가에 먼저 고수익을 낼 수 있는 종목정보를 제공해야만 한다. 일종의 '상납'개념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신종직종으로 떠오른 애널리스트가 제대로 설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투자자들의 불신도 여기서 시작됐다. 개선이 쉽지 않겠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해당 증권사와 애널리스트는 궁극적으로 시장에서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애널리스트는 일반투자자들에게 인정 받아야만 존재할 수 있는 직종이기 때문이다. 세계굴지의 증권사인 메릴린치증권은 지난 21일 엉터리보고서 하나로 1억달러의 벌금을 내고 투자은행업무와 리서치업무를 분리하기로 했다. 결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기자 김현수<증권부>기자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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