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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선이 굵고 강했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장관 등을 거친 터라 산은금융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그는 산업은행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전략을 줄지어 내놓았다. 민영화를 위해 우리금융지주 인수를 추진했다 중도에 무산된 것을 제외하고는 다이렉트뱅킹 도입, 영업지점 확대, 지방대ㆍ고졸 채용 확대 등은 "강 회장이 아니었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라고 평가하곤 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했던가.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산은 민영화는 중단됐고 기업공개(IPO)도 사실상 무산되면서 강 전 회장이 추진했던 정책이 이제는 산은금융에 짐이 되고 있다.
민영화를 전제로 추진했던 다이렉트뱅킹이나 점포 확대 등의 소매금융 확대 전략은 출구를 찾아야 할 상황이다. 더욱이 점포를 확대하면 창구직원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채용했던 고졸행원을 두고도 산은 내에서는 "한계점에 와 있다"고 평가한다. 지난해 빠르게 늘렸던 점포가 올해는 82개로 멈춰 마땅히 배치할 지점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홍기택 산은금융 회장이 취임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강 전 회장의 그늘이 워낙 짙어 그만의 색깔을 내기 힘든 게 현재 산은의 모습이다. 출구전략 마련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다이렉트뱅킹 속도를 조절하고 있지만…=온라인으로 신청하고 직원이 직접 찾아가 통장을 개설해주는 다이렉트뱅킹은 강 전 회장의 최고 히트작이다. 점포 운영 비용을 줄이는 대신 높은 금리를 제시하면서 시중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출시 9개월 만에 2조원을 빨아들였고 지난 12일 기준으로 예치액이 9조7,9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올 3월 감사원도 지적했듯 금리가 높다는 게 문제다. 더욱이 다이렉트뱅킹은 민영화를 위해 소매금융 확대를 위한 전략. 민영화가 중단된 마당에 굳이 높은 비용(이자)을 줘가면서까지 유지할 정도의 매력이 없다. 산업금융채권 등으로도 자금 조달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산은 관계자는 "(다이렉트뱅킹을) 받기는 하겠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팔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은 이미 다이렉트 금리를 여러 차례 낮췄다. 지난달 6일 정기예금인 'KDBdirect 하이정기예금' 금리(1년 만기)를 연 3.4%에서 3.15%로 0.25%포인트 내린 데 이어 일주일 후엔 2.95%로 0.2%포인트 또 낮췄다. 수시입출금 예금도 0.25%포인트 낮췄다.
◇중단된 점포 확장…고졸 채용 등 해법도 난관=고졸 채용은 강 전 회장이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을 맡고 있던 시절부터 애착을 갖고 추진했다. 2011년 90명, 지난해에는 120명을 채용했다. 특성화고 출신자 등 우수 인재들이 대거 몰렸고 이들을 위해 사내 대학인 'KDB 금융대학'도 열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소매금융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적극 추진했던 점포 확장을 올해부터 사실상 중단한 탓이다. 산은의 점포는 82개로 올해는 새로 개점한 곳이 없다. 점포 확장이 중단됐다는 점은 고졸이나 지방대생 채용 확대 전략에도 변화가 온다는 것을 뜻한다. 산은은 고졸이나 지방대생을 신규 점포나 지방 점포에 배치해 인력 운용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전략이었다. 당장 올해부터 고졸 채용은 절반 이상 줄였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고졸 채용을 줄일 수도 없다. 역풍을 우려해서다. 산은 관계자는 "난감하다. 배치할 공간이 없는데 마냥 늘릴 수도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