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동계올림픽] '빙속 코리아' 비결 뭘까 강한 내적 동기로 무장 큰 무대서도 위축 몰라 체력 위주 훈련 성과 최악 빙질등 외부조건 오히려 실력발휘 기회로
입력 2010.02.17 17:43:54수정
2010.02.17 17:43:54
'한국이 스프린트 스케이팅 메달을 싹쓸이했다.' (UPI통신)
모태범(21ㆍ한국체육대)이 사상 처음으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일궈낸 데 이어 이상화(21ㆍ한국체육대)가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최초로 금메달을 따내자 외신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잇따른 한국의 선전 비결에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겁 없는 신인류의 부상=전문가들은 이번 대회에서 선전하는 원인을 무엇보다 기성세대와 판이하게 다른 신세대의 사고방식에서 찾고 있다.
이번 대회 금메달 트리오 중 이정수 선수는 단국대, 모태범ㆍ이상화 선수는 한국체육대 2007학번인 동년배들이다. 특히 모태범 선수와 이상화 선수는 사립학교인 은석초등학교 동창생이다. 남에게 등 떠밀려 시작하거나 어려운 환경을 탈출하기 위해 시작한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서 시작한 운동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외적 동기보다 내적 동기가 강하다 보니 세계 무대에서 정상급 기량을 갖춘 외국선수들과의 경쟁에 겁 없이 달려들 수 있었다.
김병준 인하대 스포츠심리학 교수는 이와 관련, "기성세대들은 신세대들이 나약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결코 약하지 않다"며 "자신이 스스로 좋아서 하는 운동인 만큼 기성세대들에 비해 동기부여가 훨씬 잘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종목이나 개인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신세대들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미친 듯 빠져들기 때문에 숨어서 개인훈련을 할 정도"라며 "그것은 앞선 세대들이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게다가 이들의 체격조건과 기록은 이미 세계 수준에 근접해 있던 터여서 스타에 가려 있다가도 특별한 전기만 맞으면 언제든 빠르게 치고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 등 가족의 전폭적인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박성인 빙상연맹 회장은 "오늘의 김연아가 있기까지는 부모의 역할이 95%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철저한 준비에 체력도 뒷받침=가장 큰 원동력은 체력이 강한 어린 선수들이 대회장의 거친 빙질 상태에서 비교우위를 보인 데 있다.
이번 대회가 열린 리치먼드 올림픽오벌 경기장은 빙질이 썩 좋지 않다. 코스 레코드도 이강석 선수도 지난해 세운 34초80으로 제러미 워더스푼(캐나다)이 지난 2007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세운 세계기록(34초03)에 비해 무려 0.77초나 뒤진다.
빙질이 원래 좋지 않은데다 남자 결선 대회를 앞두고 정빙기가 고장 나 빙질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이날 일부 국가에서 항의할 정도로 경기력에 영향을 준 상황이었다.
거친 빙질은 힘이 좋은 한국의 어린 선수들에게 우승 선물이 됐다. 1,000m가 전문인 모태범 선수는 스케이트 기술보다 파워가 돋보이는 대표적인 선수다. 김관규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감독은 "모태범은 중장거리 전문이라 힘으로 승부하는 스타일이다. 덕분에 빙질이 물러도 파워를 앞세워 박차고 나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여자 스프린트에서 금메달을 일궈낸 이상화 선수 역시 이규혁ㆍ이강석 등 남자 선수들과 함께 연습 레이스를 펼칠 정도로 체력이 좋다. 1990년대 한국 빙속의 간판이었던 제갈성렬 SBS 해설위원은 "상화는 파워가 좋고 남자 선수들과 훈련하면서 기술도 몰라보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승훈(22ㆍ한국체육대) 선수가 이보다 앞서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장거리에서 메달을 따낸 것도 체력의 열세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이승훈은 은메달을 따낸 뒤 "거의 체력 위주로 운동을 집중적으로 한 게 들어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제갈 위원은 이와 관련, "빙속 선수들이 쇼트트랙 경기장에서 훈련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며 "짧은 트랙을 오래 돌면 다리 근력에 엄청난 부하가 생겨 지구력이 증가하고 코너링도 훨씬 섬세해진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