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삼미·진로·대농·기아 금융권 부채만 21조

◎인수할 기업이 없다/구조적 불황… 스스로 살아 남기도 벅차/금융기관들 뒤처리 묘안없어 전전긍긍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부실기업은 무더기로 쏟아진 반면 이들 기업의 처리는 극심한 난항을 겪고 있다. 한보철강은 매각이 유찰되고 한일그룹의 우성건설 인수는 무산됐다. 또 부도유예 대상으로 선정된 대농과 진로그룹은 계열사와 부동산 매각 등 대대적인 자구노력을 추진중이며 이번에 부도유예대상으로 뒤늦게 선정된 기아그룹도 비슷한 행보를 걸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더구나 지난해 이후 대형부도로 거액의 부실채권을 떠안게 된 금융기관들은 부도 기업의 뒤처리에 묘안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부실기업의 처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매각대상 기업의 사업전망이 불투명하고 거액의 부채를 떠안고 있는데다 인수에 따른 혜택도 거의 없어 인수하겠다는 기업이 제대로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80년대만 하더라도 정부는 부실기업 정리 과정에서 인수기업에 종자돈을 지원하고 부채 원리금 상환기간을 장기간 유예하는 한편 인수에 따른 세제상 혜택을 줌으로써 부실기업의 매각을 과감히 촉진시켰다. 반면 90년대 들어서는 부실기업을 인수하더라도 종전과 같은 혜택이 거의 없어진 데다 구조적인 불황을 맞아 기업들이 다른 기업에 대한 인수여력은 고사하고 스스로 살아남기도 벅찬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올들어 한보를 필두로 삼미, 진로, 대농, 그리고 최근 부도유예대상으로 선정된 기아그룹 등 대표적인 5개 부실기업에 지원된 금융권 자금은 무려 21조원에 이른다. 이중 지급보증을 감안하더라도 지난 6월말 현재 총통화(M2) 말잔액 1백88조원의 10%에 육박하는 거액이다. 세계적으로 높은 저축률로 조성된 국민들의 소중한 자금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부실기업에 흡수 탕진되는 자원배분의 왜곡현상이 극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이후 부실화로 경제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던진 기업들은 우성, 삼익, 건영, 한보, 삼미, 한신공영, 진로, 대농, 기아 등 굵직굵직한 업체들이 망라되고 있다. 이들 대기업뿐 아니라 법정관리에 들어간 중견기업까지 감안할 경우 금융권이 시급히 처분해야 할 부실기업의 규모는 금융권 전체의 처리능력을 턱없이 웃돌고 있다. 한일그룹의 우성건설 인수가 무산됨으로써 우성건설 처리문제는 원점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성건설에 대한 금융단의 채권액은 1조2천억원규모에 이른다. 금융조건을 둘러싸고 일부 채권금융기관과 주거래은행이 우여곡절끝에 합의에 성공했던 우성건설의 제3자인수가 물거품으로 끝나고 한일그룹이 인수자에서 배제됨으로써 또다시 소모적이고 지루한 제3자인수 과정을 밟게 됐다. 한보철강, 삼미특수강, 기아그룹의 부도유예대상 선정이후 매물로 나서게 된 기아특수강 등 철강업체들도 부실화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한보철강 매각을 위한 2차입찰이 오는 29일 실시될 예정이지만 인수대상업체들은 계속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조기매각에 큰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부도유예대상으로 선정된 기아그룹의 계열사중 매각 1순위는 기아특수강이 꼽힌다. 그러나 기아특수강은 생산품의 절반이상을 기아자동차 등 완성자동차 부품생산업체에 공급한다는 특성이 있어 매각이 무한정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업계는 점치고 있다. 부도유예대상인 진로는 이미 매각대상 12개 계열사중 진로하이리빙, 진로엔지니어링, 진로쿠어스농구단을 매각했고 나머지 8개 계열사도 매각을 추진중이다. 이밖에 서울서초동 부지 8천4백여평, 서울문래동 부지 1천5백여평, 서울양재동 화물터미널부지 2만8천평 등도 팔기 위해 내놓았으나 여전히 인수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기아특수강을 1차 매각대상으로 내놓을 것으로 보이는 기아그룹은 광주 내방동소재 아시아자동차 공장부지의 일부, 시흥 기아자동차 애프터서비스 사옥, 여의도 기산사옥부지 등의 부동산을 매각할 방침이며 그룹 본사가 들어선 여의도 기아빌딩도 매각을 추진중이다. 대농은 자구계획의 일환으로 21개 계열사중 협약대상인 4개사를 제외한 모든 계열사를 매각할 방침이고 신갈 그룹연수원, 광화문 당주빌딩, 세검정 미도파체육관부지 등 보유부동산도 팔아치울 예정이다. 기업체 부실화는 이들 기업에 대출해준 금융기관의 부실화로 이어지면서 부실채권이 많은 금융기관들도 자구노력 차원에서 계열사 및 보유부동산 매각에 나서고 있어 산처럼 쌓여가는 기업 및 부동산 매물은 국민경제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같은 왜곡현상은 무엇보다 1차적으로 기업들에 책임이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적절한 때에 구조조정을 유도하지 못한 채 기업논리에 놀아난 정책 당국자들도 책임을 피할 수 없으므로 서둘러 후속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김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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