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나라에선 더이상 못살겠다』고 훈장을 내던지고 이민을 떠나야겠다는 「씨랜드」 희생유아 엄마의 아픔이 가슴을 저민다. 총리가 철저한 재조사와 재발방지를 다짐하고 유족을 위문한지 불과 두달밖에 안된다.그때도 정부는 안전불감증 엄중처벌, 소방안전대책 등 여러대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씨랜드에서 희생된 유치원생들과 부모들의 통곡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그 두배에 이르는 많은 학생들이 또 희생됐다.
문민정부에서는 이것저것 무너져 멀쩡한 사람들이 죽더니 국민의 정부 들어선 어린 새싹들이 불에 타 죽는 일이 잇따르고 있는 정권이 바뀌고 제2건국위 등 갖가지 위원회가 설치돼도 이런 사건을 불러오는 밑바닥에 도사린 부정부패를 쓸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씨랜드나 인천호프집 화재사건의 뿌리는 똑같다. 바로 『업(業)-관(官)유착」의 폐해 때문이다. 경찰간부가 유흥업소 주인의 집에 공짜로 전세를 살고 주변업소에서 정기적으로 돈까지 거둬주며 상납하는 그런 악의 고리는 곧 이같은 참사를 계속 부를 수 밖에 없다.
인도총독과 옥스퍼드대 총장을 지낸 외교관 G·N·커즌은 100년전 조선여행기를 통해 한국관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관리는 관직을 이용한 수탈로 살아가며… 상류층과 관리의 폐해는 경쟁과 위기 상황에서도 왜 조선인들이 무신경한가를 설명해준다』고 말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국제사회에서 관료들의 부정부패도가 심각하다는 경고를 계속받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가슴이 가위눌리듯 답답하다. 자존심도 여간 상하는 것이 아니다.
윗물도 아랫물도 여전히 정화되고 있지 않은 이 사회에서 「젊은 피 수혈」만으로 정화될 수는 없다. 건전한 사회란 흐르는 시냇물 처럼 한바탕 흙탕물이 일어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곧 깨끗해지는 것처럼 도덕률이 살아있는 사회다. 악동들이 시냇물을 흙탕질로 엉망으로 만들어도 다음달 가보면 다시 물이 맑아져 있는 시골냇물 처럼 이 사회는 흐르는 물이 필요한
이제 우리는 맑은 물이 어디서 흘러 나와야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온 가정이 나서고 온 국민이 나서야 한다. 윗물이 맑아지기만을 기다린다면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하겠는가. 또 언제 IMF 한파를 이겨내고 한국 경제가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은 내년 총선에 보다 많은 관심과 참여가 꼭 필요하다. 신선한 인물을 뽑아야 한다. 지금의 정치인들은 일련의 불행한 사건들이 이어져도 이에대해 단 한마디 언급도 없다. 다만 꼴같지 않은 일로 국민들의 마음만 어둡게 하고 있다. 이들은 내년 총선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있다. 총선 승리만능주의에 빠져있는 과정은 무시되고 결과만 중시되는 지난 시절의 유산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는 증좌다.
정부의 뼈를 깎는 각성도 뒤따라야 한다. 먼저 경찰이 불법유흥업소의 「후견자」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마당에 이번 사건수사를 경찰에 맡겨서는 안된다. 인천지검이 맡도록 해야 한다. 검찰은 경찰 구청 소방서 등 말단의 검은 유착의혹에 국한해서는 안된다. 차제에 관청과 업자들간의 부패고리를 차단하겠다는 각오로 수사를 펴고 엄벌해야 할 것이다.
申 正 燮<생활건강부 차장 /SHJ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