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린 개혁 어젠다… 꼬여버린 대외정책

■ 오바마 대통령 취임 100일
총기규제·이민개혁 의회 못넘고 북핵·보스턴 테러에 불신 깊어져
예산안·채무한도 증액도 불투명… 미약한 경기 회복세 마저 발목



미국 역사상 재선에 성공한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기록될 버락 오바마(사진) 대통령이 30일 취임 100일을 맞이한다. 하지만 화려한 출범과 달리 오바마 2기의 개혁 어젠다는 초반부터 흔들리고 있다. 총기규제ㆍ이민개혁 등의 정책은 의회를 넘지 못하고 있으며 대외정책은 북한의 핵실험 등에 휘말려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보스턴 테러까지 겹치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안보정책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는 상태다.

자칫 인기가 떨어져 지난해 대선 후보를 지명하는 공화당 전당대회조차 참석하지 못했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연설을 통해 재정문제 해결을 통한 경제회복, 이민ㆍ총기개혁 등 진보적 어젠다를 강력하게 추진할 것임을 천명했다. 또 대외정책과 관련해서는 "강력한 안보를 위해 영원한 전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국제사회의 협력과 이해를 통해 평화의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오바마 집권 2기의 구상은 그의 뜻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그의 개혁정책들에 속속 제동이 걸리고 있다. 최우선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꼽았던 총기규제만 하더라도 의회의 벽에 막혔다. 이달 중순 공격용 무기와 고성능 탄창의 판매를 금지하고 총기구매자의 신원파악을 강화하는 내용의 총기규제법 수정안은 상원에서 부결됐다. 미 총기협회(NRA) 등의 강력한 로비와 유권자들을 의식해야 하는 의원들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민개혁 역시 암초를 만났다. 의회 상원이 초당적으로 추진해왔던 이민개혁법안이 보스턴 폭탄테러로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테러범인 차르나예프 형제가 이민자로 확인됨에 따라 이민개혁의 추진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의회전문지 '더 힐'은 "미국에서 자란 테러리스트의 공격이 오바마 2기의 개혁 어젠다를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 문제도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국내적인 요인과 유럽의 경기침체, 중국의 성장세 둔화 등 대외적인 요인이 결합되면서 미국 경기 회복세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예산안과 연방정부 채무한도 증액 처리는 공화당과의 대립으로 인해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면서 미 경제에 불확실성을 던져주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10일 3조7,700억달러 규모의 2014회계연도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와 함께 오바마 대통령은 세금인상과 예산축소를 병행해 향후 10년간 1조8,000억달러의 재정적자를 추가로 줄여 적자규모를 총 4조3,000억달러 감축하겠다고 밝혔지만 공화당은 세금인상 없이 건강보험개혁 정책의 폐지와 사회복지 프로그램 등의 축소만으로 적자를 감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연방정부 채무한도 증액은 올여름 워싱턴 정가를 달굴 최대 이슈로 꼽힌다. 미 의회는 연방정부의 채무한도를 5월까지 일시 유예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당의 갈등이 풀리지 않는다면 미국 신용등급 하락을 불러왔던 2011년 여름의 극심한 대립이 되풀이 될 개연성이 매우 높은 상태다.

대외정책에 대한 신뢰도 흔들리고 있다. 오바마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군사적 충돌을 자제하면서 국익을 극대화하고 '아시아 회귀전략(pivot to Asia)'을 통해 중국의 팽창을 견제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화를 통한 대외 문제 해결을 내세우면서 존 케리 국무장관, 척 헤이글 국방장관, 존 브레넌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이른바 '대화파'를 중용했지만 당장 북한 핵 문제부터 꼬여버림에 따라 외부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화당과 보수세력의 비난을 사고 있다.

국내적으로 개혁정책이 지지부진하고 대외정책의 불신이 가중되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 최근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47%로 동일하게 나왔다.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퇴임 전 22%까지 떨어져 역대 최저라는 불명예를 안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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