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DNA는 다르다] 대표 경영인의 DNA

용기·소통의 리더십으로"위기 극복"



지난 1997년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연봉 1달러만 받는 조건으로 회사에 복귀했을 때 애플은 그야말로 파산 직전이었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특히 1996년과 1997년은 각각 8억2,000만 달러와 10억5,000만 달러의 대규모 손실을 냈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잡스는 "나에겐 회사를 살릴 수 있는 완벽한 플랜이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시장은 과거 독단적 리더십 스타일 때문에 쫓겨나다시피 회사를 나갔던 그를 믿지 않았다. 잡스는 위기에 빠진 회사를 살리기 위해 구조조정과 비용절감 대신 혁신과 신제품 개발을 강조했다. 정보기술(IT) 버블이 꺼지기 시작한 1999~2000년 사이 연구개발(R&D) 투자를 42% 늘리는 등 끊임없이 미래를 준비했다. 리더십 측면에서도 과거와는 달리 소통의 폭을 넓히고 전문가에게 전폭적인 권한을 위임하는 등 조직력과 팀 플레이를 강화했다. 애플의 지난해 매출은 325억 달러로 지난 1997년에 비해 4.5배가 늘었다. 뿐만 아니라 애플은 세계적인 혁신의 상징으로 자리잡았고, 잡스 개인 또한 '난세를 극복한 영웅'으로 인식돼 그 이름만으로도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CEO들은 모두가 지난 1997년의 잡스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초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국내 188개사 CEO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7%가 "우리 경제는 현재 극심한 경기침체 국면"이라고 진단했고, 응답자의 절반 가량(49%)는 "지난 외환위기 때보다 기업의 어려움이 더 크다"고 답했다. 실제로 그 동안 순조롭게 성장하며 내실을 다져온 기업들조차도 지난해 가을 이후 매출감소, 현금흐름 악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올 봄까지 경영계획조차 확정하지 못한 기업들도 속출했다. 인적 구조조정 보단 노사화합
공격·방어 조화로 경쟁력 높여
"CEO 리더십이 기업변신 열쇠로"
결정적으로 이처럼 극심한 불확실성 속에서는 시스템적 요소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아진다. 사람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는 뜻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는 시스템을 따르는 경영으로도 기업을 잘 이끌 수 있었지만 위기 속에서는 CEO의 직관과 판단력이 회사의 앞날을 좌우할 수도 있게 된다. 때문에 한국 경제가 대표 기업 CEO들의 리더십에 거는 기대는 더욱 커지고 있다. 현재까지 이들 한국 대표 기업의 CEO들은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온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IBM, 지멘스, 듀폰, GE, 미쓰비시상사, 도요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타임워너 등 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한 36개 분야별 글로벌 선진기업 중 2008~2009년 사이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경우는 애플과 닌텐도가 유일한 상황. 그러나 한국 대표기업의 CEO들은 인적 구조조정을 최대한 피하며 노사화합을 꾀하는 데 성공했고, 특히 위기 속에서 공격과 방어를 적절히 섞어가며 경쟁력을 유지해나가고 있는 점은 세계인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들 기업의 CEO들은 위기라는 환경을 긍정적으로 활용하고 앞으로 다가올 호황기를 대비해나가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김반석 LG화학 부회장은 "이번 위기를 경쟁사와의 격차를 벌릴 기회로 삼으라"고 일찌감치 직원들을 독려했고 조환익 KOTRA 사장은 "환율 등 주어진 환경을 고통스럽게만 생각하지 말고 유럽ㆍ일본 등 선진국 시장 진입을 늘리고 중국 등 추격자를 따돌리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역 샌드위치론'을 펼쳐 한국 경제 전체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CEO들의 진가를 평가 받는 무대는 아직 조명이 꺼지지 않았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 속에서 더욱 빛나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재무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장기적인 전략아래 조직의 근본 변화를 꾀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또한 위기 속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시장을 선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진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호황도 좋지만 불황은 더욱 좋다'는 마쓰시다 고노스케 일본 마쓰시다전기 창업자의 격언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면서 "'열 번 말하지 않으면 한번도 말하지 않은 것과 같다"며 소통의 폭을 넓힌 잭 웰치 전 GE CEO의 말도 요즘 같은 위기상황에서 CEO들이 참고해야 할 말이라"고 조언했다. 이러한 경영 전략 뿐만 아니라 CEO들의 리더십 자체도 위기에 빠진 기업을 바꿀 수 있는 열쇠가 된다는 분석이다. 김현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CEO들의 리더십 포인트를 ▦두려움을 다스리는 용기 ▦확고한 철학과 소신 ▦희망의 불씨가 되는 진정성 ▦무난함에 대한 경계심 ▦반전의 기회를 찾기 위한 섬세한 관심 ▦바닥을 두루 살피는 소통 ▦용맹정진의 초심 등 7가지로 정리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CEO들이 진가를 시험 받는 무대가 끝나지 않은 만큼 더 많이 사업을 챙기고, 조직과 사람 돌보기에 매진해야 한다"면서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리더십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시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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