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창] 너무 앞서간 디플레이션 논의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2월 물가가 발표되면서 디플레이션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지지난해부터 계속 떨어져 온 물가상승률이 급기야 올해 2월에는 담뱃값 인상분을 제외하면 마이너스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인 물가상승을 가리키듯 디플레이션은 지속적인 물가하락을 의미한다. 디플레이션은 매우 드문 일이다. 최근의 수치만으로 디플레이션 운운하기는 조금 성급하다.

우선 큰 틀에서 화폐제도를 살펴보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1971년 금태환제도를 폐지한 후 세계는 본격적인 불환지폐제도에 접어들었다. 말 그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화폐를 금의 양에 구속되지 않고 발행할 수 있는 제도다. 불환지페제도에서는 대부분 인플레이션을 겪는다.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관리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디플레이션을 겪은 나라는 일본 정도라고 보면 된다. 1929년 대공황을 디플레이션의 예로 많이 들고 있으나 이 당시는 금본위제도였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장기적으로 화폐적 현상'이라고 했다. 돈을 계속 풀면 물가는 오른다. 다만 단기적으로 어떨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야기한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제로 금리 통화정책을 지속하고 있는 불환지폐제도에서 일시적이 아닌 지속적인 물가하락은 어렵다.

현재의 물가 수치들을 살펴보자. 담뱃값 인상을 제외하면 물가는 떨어졌다고 하는데 단기적으로 변동이 심한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지수를 보면 2월에 2.3%로 1월 2.4%에 이어 연속으로 2%대를 보였다. 올해나 내년의 유가 평균 수준이 지난해와 비슷하든지 혹은 좀 오르면 소비자물가를 상승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계는 유가 하락이 가계소득을 증가시켜 경기에 영향을 주고 있다. 주요 선진국들은 유가 하락으로 증가한 가계소득이 270조원 정도 된다고 한다. 미국·영국·유럽연합(EU)을 보면 유가 하락으로 소비자물가는 떨어지고 있지만 소매판매는 증가해 올해 1월 소매판매는 연환산 증가율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유가 하락이 멈춰서 물가를 하락시키는 압력이 사라지면 소매판매 증가에 따른 수요증가가 물가상승압력으로 나타나게 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강력한 통화완화정책을 펼 때 세계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했지만 성급한 판단이었다. 유가 하락 효과가 물가하락에 혼재돼 나타나고 있는 지금, 많은 전문가들은 '일시적' 물가하락을 '지속적' 물가하락으로 오해하고 있다. 과도한 디플레이션 우려는 오히려 임금도 낮추고 소비지출도 늦추면서 자기실현적 길을 걷게 할 수 있다. 디플레이션보다는 장기 저성장과 관련된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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