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부동산 부양 정책을 폈다면 경제가 어려울 때 경기를 부양할 수 있었겠지만 끝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대신 부동산 제도를 완비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김영주(사진) 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 실장(장관급)은 지난 19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이같이 밝혔다.
김 장관은 이어 “부동산 정책은 과거 수십년 동안 불합리한 상태가 지속됐지만 경기가 나쁘면 부동산 경기를 부양해 해결했다”면서 “이런 방법을 쓰다 보니 정작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참여정부가 부동산 제도를 고친 결과 예를 들면 등기부에 실거래 가격을 기재하는 등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설명했다.
그는 포항 건설노조의 포스코 본사 점거 농성에 대해 “이는 명백한 불법이며 포스코는 세계적 유수 기업인 동시에 외국인 주주도 많다”면서 “근로자들이 포스코를 점거한 것은 단순한 노사문제가 아닌 만큼 정부는 이와 유사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엄정하게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부 정책을 총괄ㆍ조정하는 국무조정실장을 맡았는데 소감을 들려주십시오.
▦우선 개인적으로 이 자리가 너무 좋습니다. 매우 힘든 자리지만 아주 귀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여기 오니까 경제ㆍ사회 등의 문제를 직ㆍ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외교ㆍ안보에 대한 업무를 다뤄보는 것도 아주 귀중한 경험이고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찬반 양론이 맞서고 있습니다. 정부가 할 말이 많을 텐데요.
▦한미 FTA의 경우 실질적인 것보다는 이념적인 문제, 그리고 부차적인 것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특히 정부가 의견을 듣지 않고 준비도 없이 협상에 임하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사실 정부도 할 말이 많습니다.
정부는 지난 2000년 전후로 연구를 많이 했어요. 이념적으로 접근하면 무역자유화냐 국내 취약한 분야를 보호할 것이냐는 쟁점만 부각되는데 이게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우리의 무역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70%가 되는데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인 미국을 누가 먼저 활발하게 교역하느냐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물론 농업 등과 같이 특정 분야가 더 취약해지느냐에 대한 쟁점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개별적인 부분들은 협상과정 중 좀더 논의가 구체화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따라서 논란이 되는 것들은 국회에서 FTA특위가 구성됐기 때문에 국회에서 공론의 장이 이뤄져 논의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참여정부 이후 오히려 양극화 문제가 심화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근로자 사이의 양극화 등이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기존에 시혜적인 정책으로 중소기업을 지원했는데 이제 혁신형 중소기업에 투자 위주로 지원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한편에서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고용보험에서 방치돼 있었는데 이를 임의적 가입자로 편입하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비정규직ㆍ일용직들은 신분이 불확실해 자기 개발에 대한 투자가 미흡, 경쟁력이 낮아집니다. 정부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합니다. 한국은 사회적 고용 구조가 취약합니다. 그래서 사회적 일자리, 예컨대 복지 간병인, 요양 직종 인력 등을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취약한 고용구조를 고쳐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양극화 문제는 세계화와 정보화가 심화되면서 더욱 확산되는 세계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치유하고 대책을 세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최근 발생한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다목적 댐 건설이 다시 거론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비가 많이 왔다고 바로 댐 건설을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피해 방지를 위해 댐 문제를 검토할 수는 있겠지만 수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잘됐는지 고민해보고 이에 대한 매뉴얼을 발전시켜 향후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겠죠. 이번에는 비교적 집중호우에 대해 정부와 지방단체가 적절하게 대응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선 피해복구에 전념한 뒤 댐 건설 여부를 고민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여성총리를 가까이서 보좌하고 계시죠. 한명숙 총리의 리더십은 어떤지요.
▦그분은 부드러운 리더십과 소통을 강조하십니다. 특히 강점은 사회 각계각층과 폭 넓은 교분이 있으며 상당한 신뢰를 얻고 있다는 점이죠. 취임 이후 회의를 여러 번 했는데 매번 느낀 것은 총리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다는 사실이었죠. 정부는 최근 저출산 고령화 문제, 평택 미군기지 이전, 포스코 사태 등 어려운 문제들에 직면했는데 이런 문제들을 신속하고 결단력 있게 해결했습니다. 정말 리더십이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서는 부드러운 이미지만 보고 부처 장악력 등을 운운하는데 곁에서 보기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전문가로서 한국경제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지표상 올해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은 5% 정도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런 경기회복을 장기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겠지요. 특히 최근 경제지표는 괜찮은데 민생경제 부문에서 경기회복을 체감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우리 경제는 취약한 고용구조가 많습니다. 영세 자영업의 경우 외국은 전체 고용의 10% 가량 차지하는 데 반해 우리는 30%에 가깝습니다. 정부는 취약한 고용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직업알선 같은 ‘고용지원 서비스’를 선진화시키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기업가들에게는 투자하기 좋은 여건이 중요한데요.
▦기업들의 투자실태를 분석하면 대기업은 매년 20~30%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소기업의 투자는 떨어지고 있습니다. 기업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대기업은 국제적으로 경쟁할 수 있기 때문에 꾸준히 투자를 하고 있는데 중소기업은 사정이 좋지 못하죠.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고민스러운 대목입니다.
-저출산ㆍ고령화 문제가 심각한데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최근 저출산ㆍ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계각층이 모여 사회협약문을 체결했습니다. 이는 각계각층의 의견이 집약된 것으로 평가할 만한 것으로 봅니다. 여성의 경제활동 원활화, 연금문제, 정년 연장 문제 및 임금구조 문제 등 사회 구성원들간에 이해의 폭을 넓혔기 때문에 오는 2010년쯤 되면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정부는 우선 예산확보에 최우선할 계획입니다. 물론 새로운 조세 틀을 만들지 않고 기존 재원에서 충당할 것입니다.
-평소 정책 아이디어를 주로 어디서 얻는지요.
▦주로 외국 경제잡지라든가 각 부처 보고서와 언론 보도 등을 참고합니다. 특히 외국 잡지에서 뭔가 새로운 내용이 나오면 우리나라 상황은 어떤가 하고 비교해봅니다. 우리도 이렇게 고쳐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곤 합니다. 아울러 현장을 찾아가면 좋은 아이디어가 생깁니다. 기회가 되면 가급적 삶의 현장을 많이 찾아가려고 합니다.
● 국조실, 규제개혁의 선봉장
공장설립 절차 축소 등 기업하기 좋은 여건 역점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은 정부의 모든 업무가 총망라됐을 정도로 다양한 정책을 다룬다. 국조실은 총리의 직속 보좌기관인 동시에 정부 주요정책에 대한 정책조정ㆍ정책평가ㆍ규제개혁 등을 수행하는 독립된 중앙행정기관이다. 그러나 국조실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정부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규제개혁 임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규제개혁 부문은 경제 전문가인
김영주 장관이 관심을 쏟고 있는 국조실 내의 핵심적 업무다. 지난 98년 출범한 규제개혁위원회는 총리가 공동위원장이고 국무조정실장이 정부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사무국 역할을 국무조정실이 수행한다. 이미 알려진 대로 규제개혁위원회는 98~99년 1만1,000여개의 정부 규제를 절반 수준으로 폐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참여정부의 규제개혁은 단순한 규제폐지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수요자 중심의 규제개혁'과 선진국 수준의 '규제품질관리'를 통해 일류의 국가 경쟁력을 달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업 등 피규제자가 규제개혁 과정에 직접 참여한 민관합동의 규제개혁기획단을 2004년 8월에 국조실 내에 설치했다. 규제개혁기획단은 현재 7개 분야 45개 과제에 대한 개혁방안을 만들었다. 대표적 개선사례로는 공장설립에 필요한 인허가를 대폭 통합해 행정절차를 180일에서 100일로 단축, 각종 부담금을 감면함으로써 1억원 이상의 행정비용을 절감했다.
또한 관광단지 인허가 절차를 개선했다. 이러한 규제개혁기획단의 성과는 정부 내에서보다 오히려 민간에서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5단체는 당초 오는 8월로 종료될 예정이던 활동시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활동시한이 2008년 2월까지 연장됐다. 앞으로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하는 데 역점을 둘 계획이다. 규제품질 제고의 일환으로 '시장변화에 뒤처지는 규제'의 일제 정비를 진행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인터넷 쇼핑업체가 확산되고 있는데도 일반업체와 같은 사무실 면적 기준을 요구하거나 수요가 급증하는데도 공급을 제한하고 있는 규제와 같이 시장 상황에 동떨어진 규제를 찾아내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국제기구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의 규제개혁 추진상황을 심사하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한국의 규제개혁이 충분한 법적ㆍ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매우 역동적(dynamic)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김 장관은 규제개혁을 '정부의 역할을 재정립하기 위한 노력'으로 정의한다. 정부와 민간이 서로 더욱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규제개혁이라는 뜻이다.
● 김영주 국조실장은
업무관련 지나칠 정도로 완벽 추구
인간관계선 원만…'쾌남아' 기질도
업무에 있어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꼼꼼한 스타일로 유명하다. 실무자들이 엉성한 보고서를 가져왔다가 단번에 퇴짜 맞기 일쑤다. 직원들이 올린 보고서 표지만 슬쩍 넘기고 '도장만 쿵쿵 찍는' 일부 장관들하고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김 장관은 실ㆍ국장들이 제출한 보고서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여러 차례에 걸쳐 다시 작성해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일에 관해서는 치밀하다. 업무 처리와 관련해 지나칠 정도로 완벽을 추구한 결과 오늘의 자신이 있었다고 그는 자처한다. 항상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는 그이기에 국무조정실장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올랐다.
그렇다고 소심하고 깐깐한 사람이라고 단정지어서는 큰 오산이다. 그는 '공무원 같지 않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상대방을 배려하고 무척 겸손하면서도 시원한 성격을 지녔다. 상하간에 인간관계가 원만한 공직자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장관이라고 목에 힘주고 부하 직원들에게 권위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한다는 것. 국조실의 한 국장급 간부는 장관이 마치 친구를 대하듯 편안하게 부르고 농담까지 건네와 처음에 무척 당황했다고 전했다. 의외로 '쾌남아' 기질이 숨어 있다고 직원들은 귀띔했다.
공식 오찬 약속이 없는 날에는 국조실 내의 각 부처 직원들과 돌아가면서 점심식사를 한다. 지난 3월 취임하고 그 동안 숨가쁜 날들을 보냈지만 벌써 국조실 직원 500여명 중 100여명과 점심을 함께 했을 정도로 직원과의 스킨십을 강조한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장관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그의 대답 역시 단순 명쾌했다. 김 장관은 평소 운동을 즐긴다고 한다. 주로 테니스를 하면서 체력을 유지하는데 운동실력이 선수 수준이라는 후문.
◇약력
▦50년 경북 의성 ▦75년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75년 제17회 행정고시 합격 ▦83년 미 시카고대 경영학 석사 ▦86년 경제기획원 사회개발계획과 과장 ▦94년 재정경제원 예산총괄과장 ▦99년 기획예산처 공보관 ▦2000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2002년 재정경제부 차관보 ▦2004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실 경제정책수석 비서관 ▦2006년 3월 국무조정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