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연설 영양가 없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23일(이하 현지시각) 유엔 총회 연설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썰렁했다.이라크 재건에 동참해 달라는 호소는 늘 하던 얘기 수준이어서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작년 9월 이라크를 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해 유엔에 행동에 나서라고 촉구한 연설 때와 달리 각국 대표들은 부시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잠시 박수를 쳤을 뿐 별로 공감을 표하지 않았다. 워싱턴 포스트는 24일 `실망스러운 연설`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연설 목적이 국제적 지원을 모으기 위한 것이었다면 중요한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혹평했다. 다른 서방 주요 언론들도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사실 이날 부시 대통령은 일반적인 예상과 전혀 달리 이라크에 다국적군을 추가로 파견하고 재건 비용을 부담해 달라는 얘기를 대놓고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가가 곤혹스러워 하는 사안에 대해 공개 석상에서 강요하기보다는 1 대 1 접촉을 통해 본격적인 압력을 행사하려는 전략 때문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많다. 연설의 하이라이트는 WMD 확산을 막기 위해 새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부시는 ▲모든 유엔 회원국이 WMD 확산을 범죄로 규정하고 ▲WMD 및 관련 물질 수출 통제를 법률화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발표를 예상한 전문가가 거의 없었을 만큼 새로운 또는 느닷없는 제안이었다. 미국 영국 일본 호주 등 11개 서방국가가 참여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을 유엔 차원으로 격상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안보리 결의는 회원국에 대해 강제성을 발휘하기 때문에 이런 결의안이 통과될 경우 핵 개발 문제가 걸린 북한과 이란은 바로 타깃이 된다. 간단히 말하면 WMD나 미사일을 실은 북한 배가 특정 해역을 통과할 경우 이 결의 조항을 들어 나포와 같은 물리적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결의안은 앞으로 추진 과정에서 무수한 논란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핵확산금지조약(NPT), 생물무기협약(BTWC), 화학무기협약(CWC)과 같은 국제조약 회원국에 대해 무기의 개발ㆍ보유ㆍ이전에 관한 규제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현재의 WMD 규제 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발상이라는 점이 문제다. WMD 규제 협약 회원국이 아닌 나라에 대해 유엔 안보리 결의로 규제한다는 것은 유엔 회원국의 국가 주권을 사실상 부인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 스스로도 BTWC나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을 비준하지 않고 있어 제 3국을 안보리 결의 하나만으로 규제하는 것은 큰 무리가 따르게 된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결의안에 비토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높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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