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 이대론 안된다
2년 전 세계경기 침체로 수출이 부진을 면치 못할 때 내수는 꺼져가는 경제를 떠받친 버팀목 역할을 했다. 하지만 경기회복이라는 `빛` 뒤엔 빚이라는 `그림자`가 뚜렷하게 드리워졌다.
시기엔 차이가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신용불량자 문제는 곧 사회문제로 연결되는 골치거리였다. 이들은 단순히 채무를 갚도록 독촉하는 것보다 채무자의 경제적 재기를 지원하는 것이 결국 윈-윈(win-win)이라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돈을 갚지 않으면 죄인`이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박혀 채무에 대한 책임을 엄격히 묻는다. 은행 역시 잘만 활용하면 이득이 되는 개인워크아웃제도를 단순한 구제제도로 취급,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민간단체가 경쟁하는 미국=미국에선 비영리 민간단체들이 채무자를 대신해 채권자와 상환조건을 협상하고 상환을 대행하는 `채무관리프로그램(Debt Management Program)`을 운영된다. 법원의 채무재조정과 달리 강제력은 없지만 시간ㆍ비용적 측면에서 더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에 채권자나 채무자 모두 적극적이다.
가장 대표적인 조직은 미국 전역에 150개 회원단체(CCCS)를 둔 NFCC(The National Foundation For Credit Counseling). 개별 회원단체는 전문성을 인증 받은 기관이며 전국적으로 1,425개의 지역사무소를 운영한다. 이들은 상담을 통해 채무자의 재산현황과 부채증가 원인 등을 분석, 채무관리계획을 세워준다. 상담 결과 음주ㆍ마약 등 가정문제가 있으면 관련 사회복지기관에, 도저히 갚을 능력이 안 되면 파산절차 신청을 위해 법원에 연결해준다.
지난 2001년중 CCCS를 통해 약100만명이 서비스를 받았고 이 가운데 33만명이 채무관리프로그램을 이용했다. CCCS끼리도 `장사`에 경쟁이 붙다 보니 운영은 효율성을 더해가고 있다. 전체 운영경비의 약 72%는 채권자가 채무상환액의 일정비율을 수수료로 납부하는 방식으로 부담하고 약 18%는 채무자가 등록비, 기부금 등으로 낸다.
◇소극적인 일본 금융기관=일본에선 80년대들어 소비자신용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다중채무자가 양산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87년 변호사회를 중심으로 `일본크레디트카운슬링협회(JCCA)`가 만들어졌고 90년대 후반 다중채무자 급증하자 JCCA를 확충하는 한편 법률 및 제도를 재정비하는 보완 작업이 이뤄졌다.
JCCA는 미국 비영리단체와는 달리 채무변제를 대행하는 역할은 없지만 신용카드 외에 백화점 등 소비자신용업계, 대금업계 등 포괄적인 협력체계를 갖추고 있다. 협회 운영자금의 70%는 이들 회원으로부터 회비로 충당하며 상담서비스는 무료다.
하지만 성적은 다소 실망스럽다. 일본 역시 `빚은 무조건 갚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고 구제보다 상담ㆍ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증가세가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연간 상담처리 건수는 5,000여건 수준. 개인파산이 연20만건을 넘어선 것과 비교하면 아직 역할을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정부 주도로 신용회복지원위원회를 세웠지만 아직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기본모델은 미국 CCCS를 본떴지만 설립배경과 금융기관의 소극적인 태도는 일본에 가깝기 때문이다. 300만명을 넘은 신용불량자를 지금과 같은 개인워크아웃 운영으로 소화하긴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개인워크아웃제도가 자리잡기 위해선 금융회사의 인식전환이 가장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 역시 신용불량자 기록을 삭제하는 등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대책을 고민하기보다는 기존에 만들어놓은 신용회복지원위원회 운영을 정상화시켜 시스템을 제대로 정착시켜야 한다.
<이연선기자 bluedash@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