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과거의 문제로 불행해지는 기업과 기업인이 없기 바랍니다.”
떠나는 손길승(사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30일 “제가 마지막 `희생양`이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손 회장은 이날 `사임발표문`을 통해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과정에서 잉태된 기업의 부실처리와 고비용 정치구조로 인해 불가피했던 정치자금문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할 과거의 유산”이라고 주장했다.
손 회장은 이에 앞서 “이번 일련의 사태는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전적으로 제 부덕의 소치이며 더 이상 회장직을 수행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고 사퇴이유를 밝혔다.
그는 또 “지금 우리 경제와 기업은 급속한 세계경제 재편 속에서 동아시아 경제를 주도하는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인지 아니면 중남미 국가가 선진국의 문턱에서 주저앉았던 것과 같은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지를 가르는 기로에 서있다”면서 “국내총생산 1조 달러 달성을 통해 동아시아경제의 역동적인 주체로 도약하기 위해 정부와 재계, 사회각계각층이 한 마음 한 뜻이 돼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지난 2월 전경련 28대 회장에 취임한 손 전 회장은 정부에 `국민소득 2만 달러 목표`를 제시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보였으나, 이후 SK의 분식회계 및 정치자금 불법제공 등이 연발하면서 본인의 사법처리가 불가피해지는 상황에 처하자 이번에 사임하게 됐다.
[손길승 前 전경련회장 사임발표문]
존경하는 원로 회장단 여러분과 회원사, 그리고 전국경제인연합회 임직원 여러분.
그 동안 SK와 관련된 여러가지 일로 인해 회원사와 국민 여러분들께 너무나 많은 심려를 끼쳐드려 죄스런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번 일련의 사태는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전적으로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저를 비롯해 개발연대를 살아온 세대는 지난 40여년간 오로지 세계 속의 일류기업을 만들어 경제를 키우고 나라에 이바지하는 것이 최고의 선이라고만 믿다보니, 세상이 변화하는 것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로지 앞만 보며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양식이 오히려 우리 경제와 국민 여러분께 깊은 그늘을 지우게 되었음을 절감하면서, 지금까지의 자부심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 오히려 부담이 되고 있음을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과정에서 잉태된 기업의 부실처리와 고비용 정치구조로 인해 불가피했던 정치자금문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할 과거의 유산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문제에만 매달려 교각살우(矯角殺牛)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를 발휘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기업도 이번 일을 계기로 과거 고도성장기에 불가피했던 각종 관행들에 대한 뼈아픈 자기반성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다시는 과거의 문제로 불행해지는 기업과 기업인이 없도록, 제가 마지막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비록 저는 오늘 물러나지만, 이제 전경련은 이 시대에 맞는 패러다임을 가지고, 책임있고 능력있는 기업인이 이끌어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리더십과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발휘해서,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지금의 이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고, 나아가 전경련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할 국내총생산 1조달 달성의 견인차 역할을 하실 수 있는 분이 이끌어가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시 한번 저로 인해 회원사와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데 대하여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문성진기자 hnsj@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