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앤 조이] 디자이너가 브랜드를 꿈꾸는 이유


피카소와 앙드레 김의 공통점은? 이 둘 사이에 과연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싶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두 높은 브랜드 파워를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피카소는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앙드레 김은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물론 혹자는 예술가인 피카소와 디자이너인 앙드레 김을 직접 비교한 것이 못마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과거에 분리되어 생각했던 것들이 점차 결합하고 유사해지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도 그런 현상의 일종이다. 물론 피카소에서 보듯 크리에이터가 곧 브랜드가 되는 현상은 예술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개인적인 작업으로 간주되는 예술에서 작가가 곧 브랜드가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은 이조차도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미술의 경우 작품에 작가의 이름이 붙여지는 것은 빨라도 중세 말기이며 르네상스 시기에 와서야 어느 정도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후 미술사에서는 작가와 작품이 곧 동일시되었고 작가의 명성이 바로 그의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브랜드 마케팅의 원류가 예술이라는 말은 결코 틀린 얘기가 아니다. 미술 이외의 분야에서 비교적 일찍 브랜드 마케팅이 정착된 것은 역시 패션이다. 패션은 아무래도 친밀한 영역이어서 그런지 일찍부터 디자이너의 이름이 곧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샤넬, 피에르 가르댕, 베르사체는 곧 디자이너 이름이자 기업명인 셈이다. 과거에는 디자인하면 곧 패션 디자인을 연상하였지만 지금은 디자인의 영역도 매우 넓어졌으며, 이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그리하여 전통적으로 집단적인 작업과 기업 활동의 일부로 존재했던 디자이너가, 이제는 패션 이외의 영역에서도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고 브랜드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디자이너 브랜드는 요즘 용어로 하자면 스타 마케팅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타 마케팅의 전형은 영화산업이다. 헐리우드의 스타 시스템은 이윤을 가장 안정적으로 보장해주는 장치로서 미국 영화산업이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한 장치였다. 그런데 이제 스타 시스템은 영화산업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 영역에 적용되고 있다. 오늘날 스타란 곧 성공한 브랜드의 다른 이름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디자이너 브랜드 또한 스타 마케팅에 기반한 브랜드 가치가 시장과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에 등장한 또 하나의 트렌드인 것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는 프랑스 출신의 필립 스타크이다. 그는 거의 대중스타 처럼 인정받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마치 미술품처럼 소장되고 있다. 확실히 필립 스타크가 이전의 유명 디자이너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새로운 디자이너의 전형을 창조해낸 것은 분명하다. 소니 같은 기업 소속의 집단 디자인 시스템이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일본만 하더라도 이미 1970년대부터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었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요코 다다노리는 문학과 미술, 영화배우 등을 겸하면서 대중 스타가 되었고, 최근에는 나라 요시토모와 같은 작가가 예술과 디자인을 넘나들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2005년 서울의 로댕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전시는 그 해 한국 미술계 최고의 히트상품이었다. 이런 일본의 사례는 시장 지향적인 브랜드라기 보다는 대중문화 현상에 가까운 것이지만 여러모로 흥미로운 일임은 분명하다. 사실 모든 상품은 디자인된다. 그러므로 디자이너 진과 같이 어떤 상품이 디자인되었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생뚱맞은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맥주가 생산과정에서 살균처리되지만 어떤 맥주를 살균처리하였다고 광고함으로써 차별화 아닌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과도 같다. 어쩌면 제품을 구입할 때 S사냐 L사냐를 따지는 대신에 디자이너의 이름을 보고 골라야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디자이너 브랜드는 예외적인 현상이며 일부 잘 나가는 디자이너의 경우에 한정된 것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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