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백화점 상품 기획자 "이젠 브랜드 발굴위해 현장으로"

콧대높던 MD들 불황·경쟁격화에 대변신
트렌드 파악·신규업체 찾아 발로 뛰어
도자기 편집매장 '한국의 미'등 성공시켜


"그 구두 어디서 사셨어요?" 현대백화점의 박철희 구두바이어가 길거리에서 눈에 띄는 구두를 신고 다니는 여성을 볼 때마다 던지는 질문이다. 그는 최근 살롱화 브랜드의 잇따른 부도 이후 이를 대체할만한 브랜드를 물색하기 위해 직접 길거리로 나섰다.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여성들이 최근 삼청동 로드숍을 즐겨 찾는다는 소문을 접한 것. 현대백화점은 바이어의 현장 조사와 자체 품평회를 통해 '사라스 캐비넷'과 '바바라'를 비롯한 삼청동 디자이너 브랜드를 모아 마침내 지난해 10월과 올 3월 신촌점과 천호점에 편집매장 '모노슈'를 열었다. 그 결과 신촌점 모노슈의 경우 당초 목표 대비 120%의 매출을 달성하며 6개월만에 전체 16개 구두 브랜드 중 매출순위 4위에 올랐다. 그동안 입점 업체들에게 콧대 높기로 유명했던 백화점 MD(상품기획자)들이 변하고 있다. 국내 유통환경 변화와 불황으로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과거 사무실에 앉아 입점업체를 고르던 대형유통업체 MD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 브랜드를 발굴하고 입점시키기 위한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현대백화점 본사 3층에 위치한 상품본부는 매일 오후만 되면 마치 휴일을 방불케 할 정도로 한산해진다. 이는 현대백화점이 올해부터 상품본부 직원들의 근무방침을 '오전 내근ㆍ오후 외근'으로 새롭게 바꿨기 때문. 이에 따라 매일 오후엔 1~2명의 전화응대직원을 제외한 나머지 구매 담당직원들은 직접 현장에 나가 경쟁사 동향과 상품 트렌드, 신규업체 발굴 등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신세계백화점의 생활부문 공동편집매장 '한국의 미'도 담당 MD가 오랫동안 공을 들인 결과다. 김미순 생활팀 바이어는 생활도자기로 새로운 식탁문화를 제안하는 편집매장의 컨셉트에 맞춰 인사동 도자기 전시장은 물론 경기 여주와 이천의 유명 도자기 공방을 직접 찾아다니며 도예작가의 섭외에 매달렸다. 그러나 기존 작가들을 공방과 전시장으로부터 상업적인 공간인 백화점으로 불러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대부분의 작가들은 일반 대중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것과 편집매장 형태로 다른 작가 작품과 함께 전시된다는 것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김 바이어는 차별화된 한국 도자기 편집매장이 국내 도자기 시장에 새로운 성장방향을 제시해줄 것이라며 수차례에 걸쳐 작가들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백화점 입점을 성사시켰다. '한국의 미'는 입점 이후 월 평균 8,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며 목표 대비 115%의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번(커피향의 말레이시아 빵) 전문매장 '파파로티'는 식품담당 MD가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발굴해낸 경우다. 전일호 식품 MD는 일본 백화점 시장조사 도중 처음 번을 접하고 성공에 강한 자신감을 느껴 국내 유통업체를 수소문한 끝에 백화점 입점을 성사시켰다. 파파로티 매장은 지난해 3월 본점을 시작으로 현재 강남점, 노원점, 스타시티점 등 총 11개로 매장 수를 확대해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 오픈한 잠실점의 경우 19.2㎡(5.8평)의 작은 면적 때문에 음료는 판매하지 못하고 있지만 월 평균 1억4,000만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대박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파크백화점이 올 봄 매장 개편에 맞춰 선보인 '디자이너스 컬렉션 가구' 브랜드 역시 담당 MD들의 발품으로 탄생했다. 리빙관 MD들은 지난해 가을부터 3~4개월에 걸쳐 '밴키즈', '벤텍', '예가' 등 소량으로 맞춤 생산하는 가구 매장들을 직접 일일이 돌며 설득한 끝에 입점에 성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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