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재선 이만섭은 누구

국회의장 재선 이만섭은 누구16대 국회 전반기를 이끌 이만섭(李萬燮) 국회의장은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등 정당대표를 네차례나 지냈고 국회의장직에는 두번째 오른 8선 관록의 여의도 정계 터줏대감이다. 대구 출신으로 연세대를 졸업한 뒤 지난 57년 동아일보 정치부기자를 거쳐 31세때인 지난 63년 6대 국회 공화당 전국구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8,9대와 13대를 제외하고 8번이나 원내진출에 성공했고, 지난 93년 4월 문민정부 출범후 재산공개 파문으로 물러난 박준규(朴浚圭) 의장의 뒤를 이어 잔여임기 1년2개월동안 첫 국회의장직을 역임했다. 5공 당시 국민당 총재와 97년 대선이후 국민신당 총재시절을 제외하고 줄곧 여당생활만 했다는 점에서 일부 비판적 평가도 있지만 「꼿꼿하고 바른말 잘하는」 원로정치인이라는 평가에는 이의가 없다. 李 국회의장은 취재기자시절인 제1공화국때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최고회의 출입당시 박정희 의장의 눈에 거슬리는 기사를 써 필화로 구속되기도 했다. 7대 의원 시절인 지난 69년에는 3선 개헌 반대투쟁에 앞장서 공화당 의원총회에서 이후락(李厚洛)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김형욱(金炯旭) 중앙정보부장의 해임을 요구했다가 71년부터 8년간 정치활동의 공백기를 맞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14대 국회 전반기 의장시절인 지난 93년 말 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으로부터 예산안과 정당법, 안기부법의 강행처리 압력에 끝내 버티는 「뚝심」을 발휘, 여야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97년에는 신한국당 대표서리로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를 지켜보다 경선잡음 문제를 이유로 전국구 의원직을 버리고 탈당, 이인제(李仁濟) 후보의 국민신당에 합류했으며 98년 9월 국민신당 의원들과 함께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이후 지난해 7월 특검제 도입을 둘러싼 국민회의-자민련 지도부간 갈등수습 국면에서 총재권한대행에 임명된 뒤 신당창당 준비위원장 등을 지내며 올초 민주당 출범때까지 원만히 당을 이끌었다는 평을 들었다. ▲ 부인 한윤복(韓潤福·68)씨와 1남 3녀. 재산총액은 20억7,000만원(직계 포함). ▲ 대구(68) 연세대 정외과 동아일보 기자 6,7,10,11,12,14,15,16대 의원 공화당 당무위원 한국국민당 총재 신한국당 대표서리 국민신당 총재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민주당 창당준비위원장 민주당 상임고문 김홍길기자91ANYCALL@SED.CO.KR 입력시간 2000/06/05 19:08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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