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14일 미국 GM 본사의 프리츠 헨더슨 회장이 산업은행을 방문해 민유성 행장과 면담을 했다. 환헤지를 잘못해 2조7,000억원의 손실을 입은 GM대우의 경영정상화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면담을 마친 헨더슨 회장은 곧바로 기자들과 만나 "GM대우 주채권은행인 산은과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으며 GM대우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GM은 '립서비스' 이외의 어떠한 행동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오히려 GM대우의 정상화를 위해 한국 정부와 산은이 GM대우에 1조원 이상의 신규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GM은 그 사이 다른 주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헐값에 유상증자를 단행, 실권주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GM대우 보유지분을 50.9%에서 70.1%까지 끌어올렸다. 2대 주주인 산은은 보유지분이 27.9%에서 17.0%로 떨어져 소수주주권 행사도 어렵게 됐다.
산은과 대화와 협력을 통해 GM대우 경영을 정상화시키겠다는 약속은 결국 시간을 벌기 위한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산은은 ▦대우차 생산물량 확보 ▦라이선스 제공 ▦경영권 참여 등의 조건이 받아들여지면 GM대우에 신규자금을 투입할 수 있다는 탄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GM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GM은 대주주로서 당연히 부담해야 하는 의무ㆍ책임은 소홀히 하면서 한국 정부와 산은에 경영실패에 따른 손실을 떠넘기려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지난 10일 GM의 비(非)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논리를 하나하나 꼬집으며 기획기사를 내보낸 것에 대해 마이크 아카몬 GM대우 사장은 "한국에서 철수하지 않는다. (GM대우 정상화를 위해) 산은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해명자료를 임직원들에게 보냈다.
GM이 한국시장에서 철수하지 않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일은 GM대우가 우량기업으로 변해야 하고 경영이 정상화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GM 측이 수수방관으로 일관하기보다는 조속히 산은과 머리를 맞대고 대화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변죽만 울리다 보면 '양치기소년'이 되기 십상이다. 스스로 대주주로서의 책임을 평가해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