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개정 문제는 우리 경제의 한단계 업그레이드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가에서는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이 환경노동위원회에서의 압도적 숫자를 바탕으로 오는 6월 국회에서 비정규직법 개정을 강행 처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하지만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그럴 의사가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는 이번 비정규직법 시리즈를 위한 인터뷰에서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그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대화를 하고 합의를 통해 통과시킬 것입니다"라고 못박았다. 추미애 환노위 위원장도 "현장의 얘기를 좀더 듣고 난 뒤 여야가 대화를 통해 해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화에 무게중심을 뒀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도 대화를 원하고 있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한나라당과 정책연대 중임을 재확인하며 대화 의지를 강조했다. 임성규 민노총 위원장도 "정부ㆍ한나라당과 입장 차이가 크지만 대화의 문은 언제든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발언이 정치적 수사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내놓은 비정규직법 대안에 나와 있다. 서로의 주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것 같지만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합의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공통분모가 확연히 드러난다. 한나라당 안은 비정규직법의 일시 유예와 정규직 전환에 대한 인센티브 지원으로 요약된다. 민주당은 비정규직법을 일단 시행하되 정규직 전환에 대한 과감한 인센티브 지원을 주장한다. 인센티브 지원 측면에서 여야는 공통점을 갖는다. 한국노총은 민주당 안과 거의 같다. 민노총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아예 폐지하고 사용사유 제한 등을 담은 대체입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임 위원장은 민주당안에 대해 "아쉬운 측면이 있지만 일정 부분 수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번 비정규직법 개정 논의를 좁혀보면 핵심은 사용 기간이다. 이를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릴 건지(정부안), 일시 유예할 건지(한나라당), 그대로 시행할 건지(민주당·한국노총)가 관건이다. 기간을 연장하자는 정부안은 여당인 한나라당마저 반대한다는 점에서 논의 대상에서 빠져도 무리가 없다. 그렇다면 일시 유예와 그대로 시행을 놓고 현장의 얘기를 듣고 장단점을 분석하면 된다. 민주당과 한국노총 등은 지난 2007년 숱한 고민과 토론을 거쳐 어렵게 합의한 비정규직법을 2년 만에 바꿀 경우 법의 안정성을 해치고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반대한다. 개정을 하더라도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유예 자체가 비정규직 근로자의 양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나라당의 입장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 입장에서 당장 7월의 실업대란이 불 보듯 뻔한데 그냥 시행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임 의장은 반문한다. 비정규직법 때문에 해고위기 상황을 맞는 근로자가 정부 주장처럼 100만명에 이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도 앞으로 1년 동안 약 50만명이 정규직 전환 아니면 해고 상황을 맞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임 의장은 "전체 비정규직법에 대한 합의가 어렵다면 일단 유예에 대해서만이라도 합의한 다음 구체적인 내용은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 부분 역시 민주당과 궤를 같이한다. 환노위 소속 김상희(민주당) 의원은 "사용 기간 등 핵심은 일단 놔두더라도 정규직 전환에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등의 부수법안은 우선적으로 처리하자"고 밝혔다. 앞뒤가 바뀌었을 뿐 사안의 시급성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김 의원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새로운 합의 프로세스를 만들자고 제시했다. "지금처럼 여야와 노동계가 각자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전문가 등 각계각층이 모여 함께 현장도 가보고 대안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서로 해결 의지는 확고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만나야 한다. 그런 점에서 12일 환노위가 주최한 비정규직 관련 자문위원회의가 한나라당의 불참으로 반쪽 회의로 끝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야5당은 오는 19일 비정규직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부터라도 모두 모여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를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