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질서 재편 나선 중국의 힘 보여준 날"… 경제패권 야심 재천명

■ AIIB 협정문 서명
과잉생산 심각한 中기업 '일대일로' 등 성과 기대
미·일 견제 심해지면서 국제금융기구도 '속도'
태국 등 7개국 서명 보류… AIIB 순항할지는 미지수


29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협정문 서명식은 아시아 경제패권을 노리는 중국의 의지를 대외적으로 천명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은 한 발 더 나아가 막강한 위안화 파워를 앞세워 미국 주도의 금융질서를 재편하겠다는 의도도 굳이 감추지 않고 있다.

AIIB 협정문 서명식이 열린 29일 중국 언론들은 이날을 '중국의 힘을 보여준 날'이라고 표현하며 금융패권의 야심을 그대로 드러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계열의 경제주간지 국제금융보는 "국제 화폐 시스템이 효과를 잃고 국제통화기금(IMF)이 개혁에 실패하며 AIIB가 탄생했다"며 "중국 경제의 힘이 강해지고 아시아 경제의 발전 잠재력이 커지고 있는데다 유럽과 아시아의 일체화는 거대한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주도의 국제 금융질서 실패가 AIIB 탄생의 배경이라는 것을 강조한 셈이다.

AIIB는 미중 패권 다툼에서 나온 산물이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이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중국으로 포위하는 모양새를 만들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주변국 외교정책을 강화하며 태어났다.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이 강한 셈이다. 시 주석이 지난 2013년 10월 동남아 순방 중 아시아 지역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자금을 지원하는 국제금융기구를 만든다고 공언했을 당시 이 정도 흥행을 예상하지 못했다. 미국 주도의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이 있고 일본 주도의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있는 상황에서 AIIB의 흥행을 장담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 등 유럽 국가들과 한국·호주 등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 국가들이 참여하며 AIIB는 예상을 뛰어넘은 57개국의 창립회원국과 함께 닻을 올렸다.

중국 내부에서는 최소한 당초 기대의 절반은 달성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왕융 베이징대 국제정치경제연구센터 주임은 "미국을 견제해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중국 경제둔화 극복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AIIB는 새로운 기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과잉생산에 시달리는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AIIB를 통해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ㆍ해상 실크로드)로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3조8,40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도 일부 투입된다. 미중 패권경쟁에서도 공세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AIIB는 이미 미국 중심의 경제질서에 균열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여기에 브릭스(BRICS) 개발은행(초기 자본금 500억달러), 중남미 지역 투자기금(자본금 250억달러), 실크로드기금(400억달러), 상하이협력기구(SCO) 개발은행 설립 등을 주도하며 국제금융질서를 흔들어놓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3월 영국 등 서방국가들이 잇달아 AIIB 참여를 선언한 데 대해 "21세기 미중 간 권력이동의 신호"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의 행보가 계속 순탄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견제가 심해지고 있는데다 중국의 자극이 또 다른 국제금융기구들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12개국이 참여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1개국의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협상이 속도를 내고 있다.

또 AIIB가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국제금융기구라는 인식이 강해지며 창립회원국들이 반발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이날 서명을 보류한 국가는 필리핀·덴마크·쿠웨이트·말레이시아·폴란드·남아프리카공화국·태국 등 7개국이다. 서명을 보류한 국가들은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지배구조의 투명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필리핀의 서명 보류가 중국이 영유권을 두고 대립 중인 남중국해에서 인공섬 공사를 강행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자 신중론으로 돌아선 것으로 분석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