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이 두 달을 끌어온 프랑스 국민기업 알스톰 인수전에서 이사회 승인을 얻으며 승리를 눈앞에 두게 됐다. GE는 이번 인수를 통해 유럽 시장에서 100년 라이벌인 독일 지멘스를 위협할 강력한 발판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대표적 에너지·철도기업인 알스톰 이사회는 21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GE가 제안한 169억달러(약 17조2,600억원) 규모의 에너지 사업 인수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전일 아르노 몽트부르 프랑스 경제장관이 GE의 인수안에 대해 지지를 보낸 지 하루 만이다. 인수 협상은 주주 및 근로자 대표들의 승인 등 몇 단계 절차를 거쳐 이르면 내년 중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GE는 고용승계는 물론 1,000여명을 신규 고용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이러한 절차도 무난히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측이 최종적으로 합의한 인수안을 보면 우선 GE는 알스톰의 에너지 사업 중 석탄·가스 발전설비 생산시설을 135억달러에 사들인다. 전력망·재생에너지·원자력터빈 등 남은 에너지 부문은 알스톰과 GE가 각 50%씩 지분을 나눠 합작사를 만들기로 했다. 알스톰 이사회는 합작사에 대한 양측의 투자규모를 각 25억유로(약 34억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대신 알스톰은 GE의 철도신호 사업(13억6,000만달러)을 인수함으로써 향후 철도 사업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라고 이사회 측이 설명했다.
또 프랑스 정부는 알스톰의 대주주인 자국 통신·건설기업 부이그로부터 알스톰의 기존 지분 중 20%를 매입해 이 회사 최대주주로 올라서기로 했다. 지분 인수로 프랑스 정부는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만큼 여론이 우려하는 원자력 기술 유출 문제를 사전에 차단할 방침이다. 현재 부이그 측과 매입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몽트부르 장관은 "알스톰 지분 20% 확보가 실현되지 않으면 GE의 인수도 무산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4월 알스톰 인수설이 불거진 이래 GE는 국가적 손실을 우려한 프랑스 좌파 정부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왔다. 특히 오랜 라이벌인 독일의 지멘스가 인수전에 뛰어들자 GE는 여러 차례 제안을 수정하며 끈질기게 협상을 벌여야 했다. 지멘스는 이달 초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과 히타치제작소를 끌어들이며 GE보다 높은 인수가를 부르기도 했다. 협상이 GE 쪽으로 유리해진 것은 지난달 말. 제프리 이멀트 GE 최고경영자(CEO)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방문해 앞으로 3년에 걸쳐 프랑스에서 1,000명을 신규 고용하겠다고 제안해 돌파구를 마련했다.
관련 업계는 알스톰 인수전의 결과가 글로벌 발전설비 업계를 주도하는 GE와 지멘스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두 기업은 발전설비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등 각종 제조업 분야에서 선두경쟁을 펼치고 있다. GE는 지난해 기준 연매출 1,496억달러로 외형상 지멘스(1,034억달러)를 크게 앞선 듯이 보인다. 그러나 유럽 내 발전설비 시장에서 GE의 점유율은 17% 정도로 30% 수준인 지멘스에 떨어진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GE의 알스톰 인수가 앞마당인 유럽 시장에서 지멘스를 위협하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GE가 화력발전설비가 주력인 알스톰의 에너지 사업을 인수함으로써 화력발전 비중이 높은 중국과 아프리카에서도 지멘스를 따돌릴 추진력을 얻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애시당초 지멘스가 알스톰 인수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지멘스 관계자를 인용해 알스톰 에너지 사업은 지멘스 경영진에게 실질적 매력이 없다고 전했다. 지멘스의 인수전 참여는 프랑스 정부와 협조해 GE가 알스톰을 '헐값에' 사들이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한 전략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조 카이저 지멘스 CEO는 알스톰에 관심이 없다는 의향을 내비치기도 했다고 WSJ는 전했다. 카이저 CEO는 지난달 한 포럼에서 "앞으로는 대형 화력발전소는 에너지 발전의 대세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며 "지멘스는 화력발전보다 천연가스로 터빈을 돌리는 발전 사업에 더 치중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