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춤하는'고산 마케팅'

사망사고 책임 논란에 아웃도어 이미지 훼손
일반 이벤트로 눈돌려

세계적인 고산에 도전하는 전문산악인을 후원하는 이른바'고산 마케팅'이 주춤하고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최근까지 앞다퉈 유명 산악인을 대장으로 두는 원정대를 꾸려 내보냈지만 사망사고에 대한 책임소재가 분명치 않은 점 등이 논란거리가 되며 마케팅의 방향을 다수의 일반고객이 참여하는 이벤트로 돌리는 추세다.

26일 패션업계 등에 따르면 주요 아웃도어 브랜드 8곳 가운데 올 상반기 고산 등정을 계획한 곳은 A사와 B사 두 곳뿐이다. 대신 물품 구매량이 많은 대리점주나 VIP 고객 등을 상대로 펼치는 내부 등산행사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웃도어 시장이 시작할 때 경쟁적으로 해외 원정대를 내보내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요즘은 오히려 성과가 좋은 대고객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고산 마케팅'에 소극적인 데는 원정이 실패하거나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후원업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향후 발생하는 법적 공방에도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지난 2011년 '히말라야 촐라체 원정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사망한 장지명 대원(당시 32세)의 유족이 후원사인 K2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례는 업체 측이 가장 우려하는 경우다. 앞서 유족들은 ▦K2 측이 무리한 등반일정을 계획하는 등 프로젝트를 기획한 회사로서 생명보호를 위한 필요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K2 익스트림팀' 소속인 김형일 대장도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장 대원에 등반 지시를 내렸다는 이유로 2억9,000만여원의 배상금을 청구했다.

사건을 담당한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1부(사봉관 부장판사)는 "K2가 내부 일정 등을 이유로 등반을 무리하게 권유했거나 원정대의 자율적 의사결정에 개입한 상황으로 보기 어렵다"며 유족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장 대원의 사망원인은 추락사로 추정되지만 당시 함께 있었던 김형일 대장 역시 사망해 전후 사정을 증언해 줄 사람이 없었다는 점, 장 대원이 네팔 원정을 코 앞에 두고 K2에서 퇴직했다는 정황 등이 유족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에 장 대원의 유족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며 '내곡동 특검'으로 활동했던 이광범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LKB&파트너스에 사건을 맡겼다.

원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원인 규명이 쉽지 않은 만큼 후원업체들이 '고산 마케팅'에 동원되는 산악인들과 직접적인 고용관계를 맺기를 꺼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정대원이 직원이 아닐 경우 회사 측에 책임을 묻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 관계자는 "홍보효과는 물론 제품 필드테스트 등 원정대를 보내며 반사이익을 수혜 하는 후원업체들이 대원들과 고용관계를 맺지 않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정황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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