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년간 '세계의 공장' 노릇을 했던 중국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엑소더스가 본격화되고 있다. 치솟는 인건비에 성장세 둔화 우려까지 겹치자 기업들이 중국 내 고용을 줄이기 시작했다. 또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한 중국 기업들도 고급인재를 흡수하며 다국적기업들을 밀어내는 형국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중국 시장에서 발을 빼는 글로벌 대기업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휴렛팩커드(HP)·IBM 및 존슨앤존슨 등 유수의 기업들이 최근 중국 현지인력을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소프트웨어 전문업체인 비스퀘어는 "생산성이 기대에 못 미친다"며 베이징사무소를 폐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WSJ는 현지 인력중개업체 관계자를 인용해 "이러한 추세는 한두 달이 아니라 1~2년 이상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세계 최대 인적자원 컨설팅 업체 맨파워의 조사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중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의 일자리는 임원진을 포함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줄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때보다도 급격히 축소된 것이다.
중국계 채용 전문회사 자오판닷컴도 올해 자사 웹사이트에 등록된 전체 구인규모는 전년비 30% 가까이 늘었지만 외국계 기업은 오히려 5% 감소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기업들의 이 같은 중국 인력감축은 무엇보다 현지 근로자의 인건비가 오르면서 중국 진출의 메리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선전 등 중국의 주요 제조업 도시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급여는 3.5달러로 미국 노동자의 4분의1 수준까지 뛰었다. 2003년(약 60센트)에 비교하면 6배 가까이 치솟은 셈이다.
여기에 중국이 최근 20년 만에 가장 저조한 7%대 후반의 성장률을 이어가자 기업들이 중국 경제가 장기적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고 투자에 감속 페달을 밟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WSJ는 지적했다.
미국계 로비단체인 '미중 전국무역위원회'가 최근 미국 기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내년에 중국 투자를 늘리겠다는 응답은 50% 정도로 지난해 같은 조사 때보다 17% 줄어들었다. 또 중국 정부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공장 등 고정자산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1년 전보다 4.7% 증가하는 데 그쳐 같은 기간 19.9%에 달한 전체 고정자산 투자 증가율을 크게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까지 저부가가치 단순 제조업에 머물던 중국 기업들이 급속히 성장한 것도 서구 기업들이 중국에서 탈출하는 한 요인이라고 WSJ는 지적했다. 국제회계법인 언스트앤영의 나이절 나이트 대표이사는 "최근 중국계 기업으로 빠져나가는 인재들의 행렬이 물 흐르듯이 조용히 이어지는 추세"라며 "중국 기업의 잠재적 성장 가능성을 더 높게 보고 취업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