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10월3일] <1206> 안톤 코베르거


180부. 서구에서 처음으로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가 찍은 ‘42행 성서’ 초판본의 발행부수다. 140부는 종이에, 40부는 송아지 가죽에 인쇄한 이 책이 나온 게 1456년. 활자혁명의 원년으로부터 36년이 흐른 1492년 초판을 1,000부 이상 인쇄된 책이 나왔다. 15세기 말 베스트셀러는 독일 출판업자 안톤 코베르거(Anton Koberger)가 펴낸 ‘뉘른베르크 연대기’. 창조의 순간부터 1490년까지 역사를 담은 이 책은 일종의 세계사 그림책이었다. 독일이 배출한 가장 유명한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션의 선구자로 꼽히는 알브레흐트 뒤러의 판화 등 645점의 목판화가 들어간 이 책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활자술이 서구 전역으로 퍼지는 데 기여했다. 코베르거는 출판의 기업화를 이룬 최초의 인물. 1440년 뉘른베르크에서 금세공업 겸 금융업자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유복하게 자라났으나 30세인 1470년 가업을 버리고 출판사를 차렸다. 24대의 인쇄기계를 사들이고 수백명의 식자공과 교정자, 삽화가와 제본공을 고용한 그 덕분에 뉘른베르크는 출판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코베르거는 경영능력도 있었는지 인쇄와 판매를 분리하고 각국에 제휴망을 깔았다. 현대적 의미의 진정한 출발업자로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수도원에서 사제들이 필사한 라틴어 책자만 서적으로 통하던 시절, 그가 퍼뜨린 책자들은 독일어권의 언어를 통합시키고 국민적 동질감을 확인시켜줬다. 1520년 10월3일 80세로 사망한 뒤 그의 가족들은 금세공업과 보석상 사업으로 되돌아갔지만 그가 뿌린 씨앗은 독일어권의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이 왔어도 출판가는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요즘 코베르거를 떠올린다. 경제를 살리는 것도 결국 지식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