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피랍 41일만에 탈레반에 억류됐던 한국인 인질들이 전원 풀려나게 된 것은 협상 초기부터 우리 정부가 줄기차게 내세웠던 ‘아프간내 수감자 석방은 한국 정부의 권한 밖’이라는 주장이 제대로 먹혀 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특히 협상 막바지에 탈레반측이 고집했던 ‘수감자 8명 선(先) 석방안’이나 ‘여성 수감자-인질 우선 맞교환안’ 등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의 집요한 설득 작업에 탈레반이 결국 이를 철회한 것이 이번 협상을 급진전시킨 주 요인으로 파악된다. 한국측과 인질 협상에 참가한 탈레반 대표단의 물라 나스룰라도 28일 대면협상 뒤 “(자신들의 요구는) 한국 정부의 권한 밖인 것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런 안을 석방 조건으로 내걸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세 차례 대면협상 끝에 얻은 ‘쾌거’= 28일 석방 소식은 사흘전인 25일부터 서서히 감지되기 시작했다. 외신에서 이날 한국인 인질 19명의 석방 합의설이 흘러 나왔으며, 아프간 현지 언론인 아프간 이슬라믹 프레스(AIP)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재아래 양측이 피랍자를 전원 석방키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가즈니주 탈레반 지역사령관인 압둘라 잔도 26일 중동지역 유력 일간지인 걸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수일내 사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며 “대면협상은 협상 타결을 마무리짓기 위해 마련될 것”이라고 언급, 양측간 합의가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내비쳤다. 2차 대면협상이 열린 16일 이후 2주 가까이 전화접촉만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이런 보도는 사태 장기화쪽에 실려있던 무게 중심을 한 순간에 타결쪽으로 옮겨 놨다. ◇한국인 인질 수차례 살해 위협= 28일 이뤄진 세번째 마지막 대면협상은 오후 1시18분(현지시각)부터 2시50분까지 1시간32분 동안 진행됐다. 당초 오전 10시30분쯤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탈레반 협상 대표가 협상장소인 가즈니시 적신월사 건물에 오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다소 늦어졌다. 또다시 연기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으나 협상테이블에 한국측과 탈레반측 대표 각 2명외에, 국제적십자위원회 1명, 부족원로 1명, 인도네시아 고위급 관리 2명이 배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타결쪽으로 기대감이 높아졌다. 마침내 오후 8시15분, 아랍권 위성채널인 알자지라 방송이 피랍자 석방에 합의했다는 내용을 속보로 내보냈다. 일본 교도통신 등 다른 외신들도 잇따라 합의 보도를 내보냈으며, 우리측도 마침내 낭보를 발표했다. 이날 협상 시작 불과 1시간 30여분만에 전격 합의에 이른 것은 양측이 물밑에서 미리 중요 사항에 대한 합의를 이뤘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이날 합의는 문서가 아닌 구두로만 이뤄졌다. ◇안타까운 배형규, 심성민씨 2명의 희생= 긴박했던 ‘협상 작전’의 시작은 지난 7월 19일 아프가니스 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의해 분당 샘물교회 자원봉사자 23명이 피랍됐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 직후부터였다. 정부는 다음 날 합동대책본부를 설치하고 대응에 나섰으나 탈레반은 이날 이후 아프간정부에 구속된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요구하며 수차례 인질들에 대한 살해 위협을 시작했다. 탈레반은 협상시한을 수차례 연장한 끝에 25일 배형규 목사를 살해하고 31일엔 추가로 심성민씨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발표 마지막까지도 숨죽일 수 없던 대목은 전원 일괄 석방인 지, 아니면 단계별 부분 석방인 지 여부였다. 미국 CBS방송은 27일 “3~4명씩 소그룹으로 나눠 몇 주에 걸쳐 석방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으며, 현지에서도 ‘선 여성 석방-후 남성 석방’으로 타결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남성은 라마단(9월13일∼10월13일) 기간이나 그 이후에 석방될 수 있다는 소문까지 나왔다. 그러나 최종 발표는 전원 석방이었다. 살해당한 2명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욱 사무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