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9년 프랑스에서 사회당인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가 주당 근무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했을 때 대다수는 이를 진지한 노동정책이라기보다 대중영합적인 정치적 제스처라고 평가했다. 결국 근무시간 단축은 중소기업들의 반발에 노동비용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지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이처럼 주당 35시간 근무제는 유럽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높은 노동비용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최근 프랑스와 독일에서 주35시간 근무제에 대한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법적으로 주35시간 근무가 규정돼 있으며 독일에서는 사측과 노동자간에 35시간 근무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 있다.
독일의 경우 지멘스, 로버트보쉬,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대기업들이 노동비용을 줄이기 위해 근로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멘스는 이미 자국내 무선전화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4,000명의 노동자들과 추가적인 임금인상 없이 주당 근무시간을 35시간에서 40시간으로 늘리는 데 합의했다. 지멘스는 만약 노조가 근무시간 연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일자리의 절반을 임금이 저렴한 헝가리로 옮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쉬도 프랑스에서 노동시간을 연장하려는 움직임에 나섰다. 보쉬는 프랑스 공장에 있는 820명의 노동자들에게 추가임금 없는 노동시간 연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재무장관은 보쉬의 제안을 부당한 요구라고 지적하고 지멘스의 노사합의도 기업의 부당한 착취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게르하르드 슈뢰더 독일 총리는 프랑스 재무장관의 자국기업 비판에 대해 독일 기업의 평판을 나쁘게 하고 있다고 즉각 반격했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재무장관 역시 주당 35시간 근무규정 법률을 개정하길 원하고 있다. 그는 현재의 주당 35시간 근무가 노동자들을 도덕적 해이에 빠뜨리고 사회보장비용을 증가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주당 근무시간을 35시간으로 규정한 현행법을 유지하는 한편 기업들에게는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매우 모순적인 주장이다.
앞으로 독일기업들이 임금인상 없는 노동시간 연장을 노조와 합의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노동시장 연장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이 확대되면서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높은 독일 기업들은 저임금으로 무장한 아시아 기업은 물론 동유럽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미 많은 일자리가 동부유럽으로 이전했으며 독일 정부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주당 근무시간을 늘린다고 해서 유럽 노동시장에 만연해 있는 경직성이 단숨에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노동시간 연장은 문제의 시작일 뿐이다. 유럽 국가들이 정부규제 완화는 물론 임금삭감 등 구조적인 경제개혁에 박차를 가한다면 유럽의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