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로 반사이익 보는 기업들 메세나 운동에 적극 참여해야
한국기업 기술은 발전했지만 콘텐츠 통한 스토리텔링 약해 인문학 활용한 상상력 필요
'한류장관' '한국문화 전도사'.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행보가 광폭(廣幅)이다.
역사학자였던 최 장관은 학자에서 문화부 장관이 됐던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김성재 장관 등의 맥을 잇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최 장관의 최근 행보는 기존 역사학자를 뛰어넘는다. 문화는 물론 체육과 관광 분야까지 포괄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는 어떤 장관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한류장관' '한국문화 전도사'"라고 답했다.
최 장관은 "한국 드라마는 중국ㆍ일본ㆍ동남아시아ㆍ중동 등까지만 확산되며 아시아를 넘지 못했는데 K팝은 팝의 고향인 유럽ㆍ미국에서 통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문화부는 한국문화가 K팝이나 드라마에 한정되지 않고 더 다양하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반백의 머리에 달변ㆍ친화력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그를 서울 종로구 문화부 청사에서 만났다.
최 장관은 앞으로 한류의 방향과 관련해 "전통문화와 관련된 한류, 현대문화와 관련된 한류, 산업과 관련된 한류 등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신(新)한류바람을 타고 있는 K팝과 같은 현대적인 것도 전통적인 것을 접목해야 생명력을 갖고 외국사람도 더 특별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장관은 "전통문화는 외국인에게는 없는 색다른 것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한류가 '사랑이 뭐길래'나 '겨울연가' 같은 드라마로 시작됐지만 이후 한국적인 '대장금' '주몽' 등으로 이어졌지 않느냐"며 "K팝도 팝의 원류에 코리아가 가미가 돼서 외국인에게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뿌리 깊은 나무'나 '해를 품은 달'과 같은 드라마는 우리에게 재미있지만 외국에서도 어필할 수 있다고 보는 배경이다.
최 장관은 "얼마 전 일본에서 가수 싸이의 공연을 봤는데 싸이가 일본말을 못하니까 족자를 들고 나와 펴서 읽어주는데 일본 사람들이 매우 좋아하더라"며 "그 족자가 바로 우리 전통인 것이고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키는 게 그처럼 생명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최 장관의 이런 판단은 최근 문화부에 신설된 '한류문화진흥단' 발족과 이 한류문화진흥단을 통해 발표했던'전통문화의 대중화ㆍ현대화ㆍ세계화' 전략으로 가시화됐다. 한류문화진흥단은 한류와 관련된 중장기 전략을 짜고 다양한 분야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같은 한국문학의 번역지원은 물론 뮤지컬이나 연극ㆍ국악 같은 전통문화예술 등 K컬처 전반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한국문화가 다양하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이 한류문화진흥단에 주어진 핵심 업무다. "물론 상업적인 것보다는 공공적인 것에 주안점을 두려고 한다"는 게 최 장관의 설명이다.
외부로 나가는 한류와 함께 내부의 한류도 중요하다. 한류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한류를 밖으로 나가는 것만 생각하는 것이다. 최 장관은 "우리나라 안에서도 한류를 대중화할 필요가 있고 또 한류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K팝 전용 공연장이 서울 올림픽공원에 하나 있는데 K팝을 정기적으로, 또 상설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공연장을 일산에 더 만들 계획도 갖고 있어요. 영화관을 개조해 소규모의 K팝 전용 극장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죠. 내부 고객들도 만족시켜야죠."
최 장관은 그간 한류의 반작용으로 지적돼온 혐(嫌)한류에 대해서는 "'문화의 상호교류'라는 입장에서 풀어야 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일본과 대만 등 한류 정착기의 국가에서 주로 혐한류가 나오고 있는데 상호교류로 풀어야 합니다. 요즘 국내 아이돌 스타들은 한국사람뿐만이 아니라 중국ㆍ일본사람이 섞여 있는 경우도 있잖아요."
최 장관은 올해 체육 및 관광 분야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체육의 경우 올해 가장 중요한 것은 런던올림픽 종합 10위권이다. 텐텐(금메달 10개, 종합순위 10위)이 목표다. "사기를 높이기 위해 지도자ㆍ선수들 수당도 올리고 식단 단가도 올렸죠. 런던의 부르넬대를 빌려 전지훈련을 일주일 전에 가서 할 수 있도록 했고 코리아 하우스를 운영해 런던올림픽을 스포츠뿐 아니라 문화 올림픽으로도 열릴 수 있도록 지원할 겁니다." 문화부는 태권도가 내년에 올림픽 종목으로 재선정되게 하는 문제도 올해 체육 분야의 중요한 현안으로 다룰 예정이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해외관광객은 980만여명. 문화부는 해외관광객 목표도 올해 1,100만명, 오는 2020년 2,000만명으로 늘려잡고 있다. 특히 올해는 마지막 한국방문의 해, 한중수교 20주년에 기대를 거는 한 해이고 양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질적인 것, 인프라도 중요해진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부족한 해외관광객 숙소문제는 당면 해결과제다. 2015년까지 수도권 지역의 객실 3,000개를 늘리고 단독주택이나 아파트에서도 숙박이 가능하게 하는 정책을 문화부는 추진하고 있다. 특히 해외관광객 숙소 부족 문제는 내수관광과 연결시켜서 봐야 한다. 최 장관은 "지금 중국인들에게 숙박시설이 부족한 시기는 5월 노동절과 10월 국경절 때이지 중국관광객만 오고 일본관광객은 방문하지 않는 춘제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중국관광객이 많이 와 숙박시설이 모자란 시기만을 위해 숙박시설을 따로 지을 수는 없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결국 휴한기의 빈 숙박시설을 내국인이 많이 이용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최 장관이 "정착된 주 5일 근무제, 완공된 4대강 보 등도 잘 활용해 내국인의 국내관광도 활성화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내수관광 활성화는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는 주제다.
최 장관은 그런 차원에서 놀이하는 인간, 즉 '호모루덴스(Homo Ludens)'철학 옹호자다. 그는 네덜란드 사학자이자 인류학자인 호이징거가 쓴 '호모루덴스'라는 책을 추천하기도 했다. 문화ㆍ체육ㆍ관광의 공통점은 바로 즐기는 것이고 현대사회에서는 잘 노는 것도 중요하다. 인간은 생각도 하고(호모사피엔스), 일하기도(호모파베르)해야 하지만 쉬기도 하고 놀기도 해야 한다. 그는 전공이 '한민족의 고대축제'이기 때문에 축제에도 관심이 많다며 호모루덴스에 대한 깊은 공감대를 표시했다.
"사실 모든 문화는 놀이에서 시작된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유교문화의 폐해인 듯한데 이상하게도 논다고 하면 안 좋은 방향으로 생각합니다. 옛말에 '아는 것이 좋아하는 것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것이 즐기는 것보다 못하다'고 했잖아요. 문화정책이라는 것도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류가 국내기업들이 해외활동을 할 때 큰 도움을 주면서 한류로 반사적 이익을 보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메세나운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한류의 수혜자들인 기업들이 문화예술 기부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무역협회가 해외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해외응답자의 83.6%가 한국상품 구매에 한류가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최 장관은 이와 관련해 "재력가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삼성은 소녀시대 3D 콘텐츠를 활용해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외국은 기부할 때 재력가들이 자신의 돈으로 하는 반면 우리는 기업의 돈으로 하기 때문에 현재 메세나법이 잘 추진되지 않고 있어요. 변화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삼성이나 LG 등 국내 대기업들이 애플이나 구글 등 다국적 기업에 비해 모자란 부분으로 지적되는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이고 인문학적 기반이다. 한국은 기술은 발전했지만 콘텐츠를 통한 스토리텔링이 약한데 이는 인문학적 기반이 없기 때문이고, 결국 인문학적 기반을 활용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게 최근 국내기업을 바라보는 시각들이기도 하다.
한국은 어떻게 보면 정보기술(IT)은 발전했는데 문화기술(CT)은 발전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나오는 상황이다. 최 장관은 "스토리텔링, 즉 이야깃거리가 바로 문학ㆍ사학ㆍ철학에 있다"며 "앞으로의 발전방향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라고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
최 장관은 개인적인 좌우명을 소개해달라는 주문에 '인욕정진 보리이타(忍辱精進 菩提利他)'라고 전했다. '욕됨을 참고 정진해서 깨달아 남에게 이익을 준다'는 뜻이다. "남에게 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지식인데 지식은 준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지 않느냐"는 게 최 장관의 설명이다. 그는 장관을 그만두면 다시 교수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해라는 점에서 최 장관의 마무리 정책은 관심사다. 그는 "화룡점정(畵龍點睛)하는 마음으로 현안들을 마무리하겠다"고 덧붙였다.
■최광식 장관은 '학자 최광식'은 '고대국가 제사'로 박사학위를 딴 뒤 지난 30년간 역사학 교수로 대학강단을 지켜왔던 역사학자다. 고려대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가 최광식'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임명돼 3년간 장수하고 문화재청장을 6개월 거친 뒤 장관에 임명됐다. 국립중앙박물관장 재직 시절에는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행사를 성공적으로 열었고 지난 2009년 주요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 때는 만찬장을 중앙박물관에 유치해 행정력까지 인정받았다. '장관 최광식'의 최근 행보는 전통문화의 세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 장관은 최근 '한류문화진흥단'을 통해 한류의 지속성장을 위한 1단계 조치로 '전통문화의 대중화ㆍ현대화ㆍ세계화' 계획을 발표하는 등 전통문화의 현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취임 일성으로 밝힌 법고창신(法古創新ㆍ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의 연장선이다. 최 장관은 "전통문화 진흥은 국가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형성하는 핵심으로 국가의 지원은 선택이 아닌 당위의 문제"라며 장ㆍ차관의 임명장 수여 등 국가 주요 의례시 한복입기 활성화, 역사ㆍ인문학자ㆍ방송국PD 등과의 워크숍 등을 통해 전통문화를 다양한 방법으로 국내외에 확산시키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문화계 일각에서는 최 장관의 의욕적인 행보에서 나타날 부작용도 우려하고 있다. 우리의 과거 역사가 단합보다 당파를 기반으로 분열과 정쟁이 이뤄진 사례가 많았고 한류를 정부가 주도하고 전통문화를 강조할 경우 해외에서 반발감이 확산될 것이라는 지적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는 전통문화를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조선시대 유림들의 당쟁 등 우리 과거사의 부정적인 측면까지 들춰내 사회분열 정서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해외의 경우 국수주의적 시도로 해석돼 신한류마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보내고 있다. 드라마나 K팝 등은 세계적으로 보편적 가치의 공유라는 점이 부각돼 인기를 끌고 있는 반면 전통문화는 한국의 특수한 문화를 자국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혐(嫌)한류의 심화를 걱정하는 것이다. 최 장관의 행정력이 기대되는 지점이다. '조각보'론도 최 장관의 트레이드 마크다. 조각보는 옛날에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바느질 하다 남은 조각들을 모아놓았다가 만든 공예품. 최 장관은 "조화를 통해 멋있는 작품이 나온다는 점에서 조각보는 공생발전ㆍ소통 등 최근 한국사회 화두들과 맥이 통한다"고 말한다. TV에서 나오는 조각보 광고도 그의 아이디어다. 30년간 주말마다 해왔던 등산을 최고의 건강비결로 꼽는다. 지금은 주로 북한산을 다닌다. 최 장관은 학자에서 행정가로 변신했던 지난 4년의 소회를 묻자 "대학교수, 대학 박물관장, 국립박물관장, 문화재청장, 장관 등의 주어진 업무는 달랐지만 나는 줄곧 역사와 현대를 접목시키는 일을 해왔다"고 말했다. ◇약력 ▦1953년 서울 ▦중앙고 ▦고려대 사학과 ▦고려대 대학원 석·박사 ▦1998년 고려대 총무처 처장 ▦2001년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2001년 한국고대사학회 회장 ▦2002년 고려대 박물관장 ▦2004년 고구려연구재단 상임이사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장 ▦2011년 문화재청장 ▦2011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