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의 대표적 전형으로 비판 받아온 유럽연합(EU)의 농업 정책이 전면 수술된다.이에 따라 지난 3월 이후 EU의 농업정책 등을 놓고 교착 상태에 빠진 다자간 무역 협상인 도하 라운드가 다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EU는 26일 사실상의 무제한적인 농업지원 정책에서 벗어나 제한적인 보조금지원 정책으로 농업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즉 농산물이 생산되면 정부가 무조건 수매하는 보호정책을 포기하고 농업도 점차 시장 경제에 맡기겠다는 것. 개혁안에 따르면 앞으로 출하량이 늘어난다고 해서 무조건 정부의 보조금이 추가 지급되지 않는다. 다만 보조금을 전격 중단할 경우 농업 기반이 와해될 것을 우려해 기존의 보조금 총량은 유지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번 농업 개혁의 골격을 마련한 프란즈 피슐러 EU 농업위원회 위원장은 “우리는 국제 자유무역을 왜곡시킨 농업 정책과 결별했다“며 “이는 세계에 자유무역을 촉구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미국, 호주 등 주요 농산물 수출국들은 농산물 출하량에 관계없이 사실상 정부가 일괄 수매하는 EU의 `농업 생산량 연계 농업보조금 지원정책`이 자유무역 원리를 크게 위배하고 있다며 EU를 맹공격, 도하라운드 협상은 사실상 결렬됐었다. 그러나 도하 라운드 협상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EU 농업개혁이 현실화함에 따라 오는 9월 이집트에서 개최 예정인 세계 각국 경제ㆍ무역 장관회담에서 농업은 물론 서비스 등 난항을 겪어왔던 무역 협상이 새로운 물꼬를 틀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농업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EU가 국제사회의 압력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동안 도하 라운드의 또 다른 걸림돌이었던 미국의 유전자농산물(GMO) 이슈, 지적 재산권 등 서비스 협상도 급 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U가 최대 약점이었던 농업 부문을 양보함에 따라 미국 등 여타 국가에 대한 발언권을 강화할 수 있게 됐고, 이에 따라 상대측도 일정 부분 양보가 불가피하리라는 해석이다.
수파차이 파니치팍디 WTO 사무총장은 “EU의 농업 개혁은 농업 부문은 물론 기타 협상 분야에 자유무역 분위기를 전파함으로써 도하 라운드 협상의 새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병관기자 comeo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