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 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다. 그렇다 보니 출판 역시도 이에 무관하지 않게 되어, 여느 아동도서 전문 출판사보다 많은 과학도서를 내게 되었다. 처음 과학도서를 구상하던 무렵 이 분야를 찾는 독자가 적었다. 과학에 대한 관심이 적은 탓도 있었지만 학교 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과학이야말로 오래지 않아 그 중요성을 보편적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며 그러한 인식은 곧 과학책의 수요로 이어지리라고 믿었다.
어려운 전문서적이 아닌 즐기는 과학책을 만들기 위해 때로는 퀴즈 형식으로 때로는 만화 형식을 비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어린이 과학책을 내기 시작했다. `모터의 원리` `천체관측교실` `과학자의 눈` `과학사전` `만화로 보는 유전학 이야기` `과학캠프` 등은 단행본은 물론, `생명과학은 왜` 등을 포함한 10권짜리 기초 과학만화 시리즈를 내기도 했다. 인체나 동식물, 곤충 등 자연과학 분야에서 전기, 생명과학, 유전공학, 컴퓨터 등으로 내용의 범위도 넓혀갔다.
하지만 수십 종의 과학도서 대부분은 겨우 초판 정도 찍었을 뿐 개발비 회수는커녕 이익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다가 과학적 호기심을 질문과 응답식으로 구성한 `알쏭달쏭 과학여행`이 50만부 매출을 기록하게 되어 다소 의기소침해졌던 개발의욕을 북돋웠고 이후 3년 여에 걸쳐 낸 과학만화 시리즈 10권은 스테디셀러가 되어 회사를 이끌어가는 주요 품목이 되었다. 또한 중국에 저작권을 수출한 첫 책이기도 하다.
예림당 이름으로 지금까지 30여년간 수많은 책을 만들어 왔다. 꾸준한 스테디셀러들을 발판 삼아 현재의 예림당으로 성장해 왔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기획들이 `실패`의 꼬리표를 달고 묻혀 있다. 거기에는 과학적 아이디어를 출판에 접목해 가는 실험작도 있지만 사세를 휘청이게 할만큼 큰 기획들도 있었다.
실패한 몇 가지를 소개한다. 요즘에야 아이들이 목욕하며 물속에서 갖고 노는 BATH BOOK이 일반화되었지만 15년쯤 전에는 우리나라에 전무했던 아이템이었다. 종이 대신 스펀지와 비닐을 소재로 만드는 가볍고 폭신폭신하며 물에 뜨는 책인데, 우리는 거기에 한 가지 더 특수처리를 하여 햇빛을 쬐면 온도에 의해 글자가 나타나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원리를 설명해도 제작일선에서 엄두를 못 내서 그냥 종이 소재를 벗어난 단순 차원에 그치고 말았다.
국내에선 처음이라 그랬던지 제법 호응이 좋았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무더기 반품사태가 속출했다. 비닐에서 나는 약품 냄새가 너무 강해서 머리가 아프다는 것이었다. 제작업체와 더불어 연구해 봤으나 당시로서는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방법이 없어 결국 제작을 중단하게 되었다. 상당한 노력과 수천만원의 자금이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또 한 가지 잊지 못할 게 `순간 녹음기` 개발이다. 차 안에서 운전 중 전화를 받을 때 중요한 내용이나 전화번호를 메모할 수 없어 곤란을 겪은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곤란을 겪으면서 이럴 때 순간 녹음기가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메모 대신 간단히 녹음하여 재생할 수 있다면, 일상의 편리함은 물론 영어 등 외국어 공부를 할 때에 아주 요긴히 쓰일 것 같았다.
소리 나는 그림책 개발을 통해 녹음과 재생 기능을 가진 반도체를 개발했던 만큼 순간 녹음기의 개발은 큰 어려움 없이 이루어졌다. 크기도 요즘의 작은 휴대폰만해서 지니고 다니는 데도 불편이 없었다. 그 무렵 보이스 펜이라 하여 외국에서 수입한 순간 녹음기가 시중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녹음 시간이 우리의 절반에 불과했고 가격도 매우 비싸 10만원대였다. 이에 비해 예림당이 개발한 순간 녹음기 `올웨이즈(Allways )`는 녹음 시간이 20초나 되고 재생 음질도 월등한 반면 가격은 4만원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기대를 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보는 사람마다 획기적이라고 칭찬을 했지만 수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결국 1억5,000여 만원을 들여 제작한 순간녹음기는 도서전 등에서 회사 홍보를 위한 판촉물로 나눠줄 수밖에 없었다.
<김호정기자 gadget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