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칼럼] IT, 혼돈의 미래와 블루오션

요즘 캘리포니아에서는 신종 ‘고객맞춤형 와인 판매’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와인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포도 생산 지역을 돌면서 그해 재배된 포도 중 가장 높은 질을 자랑하는 포도 품종을 미리 구매하고 좋은 생산시설(winery)과 조건을 갖춘 곳을 골라 그해 최고의 와인을 미리 주문 생산을 한다. 그리고는 판매 분야 최고의 전문가를 불러들여 소량의 와인을 최고급 고객에게 좋은 가격으로 주문받는 마케팅을 펼친다. 고객은 나름대로 ‘나만의 맞춤형 와인’이라는 자부심과 희귀성의 고급 와인을 소유한다는 생각으로 높은 가격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처럼 전문가는 어떤 시설이나 농장, 마케팅 조직을 소유하고 있지 않아도 본인이 갖고 있는 전문지식만으로 와인 비즈니스를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정보기술(IT) 업계, 특히 통신 업체들은 2,000만의 유선 가입자뿐 아니라 3,600만의 휴대폰 및 1,200만이 넘는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들로부터 수십조원의 매출을 올리며 호황을 구가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호황’이 반드시 장밋빛을 띠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입자들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러 신규 가입자 유치를 위한 보조금이 상승했고 이제는 가입자 유치가 오히려 이윤을 깎아먹는 사태가 돼 마치 ‘물고기를 저수지에서 잡던 시절에서 횟집에서 사오는 시절’로 바뀐 형국이다. 소비자들은 다양해진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통신요금 인하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 이래저래 통신사업자들은 매출 및 이익의 감소, 소비자들의 높아지는 요금 인하 압박 등의 삼각파도 속에서 좌초의 위기를 맞고 있다. 통신사업자들이 이런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콘텐츠ㆍ서비스ㆍ네트워크, 그리고 고객을 한줄로 엮는 그 기본 구도부터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즉 그 요소들의 개방에 대한 것이다. 새로운 유비쿼터스 환경과 통신 및 방송이 융합되는 시점에서 융합된 다양한 서비스가 고객의 손에 적은 비용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정부 역시 이 콘텐츠와 네트워크의 개방을 정책적으로 밀고 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들이 개방되면 서비스 제공자는 개방으로 저렴해진 가격의 콘텐츠를 엮어 다양한 고객의 필요에 맞춰 서비스를 개발하고, 개방된 여러 개의 네트워크를 묶어 최적의 조건과 최소의 비용으로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그러면 고객들은 ‘메뉴식 서비스’에서 자기에게 맞는 서비스를 그때그때 골라 쓰며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서두에 얘기한 ‘캘리포니아 와인 전문가’의 경우와 똑같은 얘기이다. 아이디어와 기술만을 가진 탐험적 서비스 개발자들이 콘텐츠ㆍ네트워크, 심지어는 고정된 고객 하나 없이 새로운 고객들을 유치할 수 있는 통신 업계의 새로운 ‘블루오션 서비스’를 개척하게 될 것이다. 요즘 신개념의 ‘인터넷 TV’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쉽게 말해 PC로 TV를 보는 개념인데 언제든 자기가 원하는 프로그램(영화, 드라마, 뉴스, 스포츠 중계 등)을 골라 볼 수 있는 고객지향형 서비스라 볼 수 있다. 자체 제작한 콘텐츠까지 제공해 이용자가 폭증하고 있다. 그들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용자와 대화식을 통한 ‘이용자 제작 콘텐츠’까지 계획하고 있어 그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용자들의 신뢰와 자금력, 그리고 전국을 감싸고 있는 막대한 유무선 인프라를 가진 통신사업자들이 이런 ‘캘리포니아 와인 전문가식’ 탐험가들과 어떻게 영역 정리를 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무엇보다도 통신사업자들의 향후 2ㆍ3년 안에 닥칠 문제는 콘텐츠 및 네트워크의 개방이 몰고 올 ‘고객의 개방’에 있다. 고객들은 주어지는 메뉴식 서비스를 고를 때 어떤 통신사업자의 네트워크를 쓰는지는 상관하지 않을 것이고, 그 결과로 점차 통신사업자들의 ‘나만의 고정 고객’ 개념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통신사업자들이 네트워크와 서비스를 분리할지, 아니면 지금의 ‘줄(line)’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무선 인프라를 ‘가치창출형 네트워크’로 만들지 하는 것이 앞으로 그들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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