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서 '비정치인 잠룡들' 돌풍 일으킬까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팩커드(HP) 최고경영자(CEO) 등이 2016년 미국 대선전을 겨냥한 출사표를 던지면서 ‘비정치인’ 출신 잠룡들이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미국에서는 1953년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 이후에 비정치인 출신이 곧바로 대통령이 된 적이 없지만 이들 잠룡은 만연한 ‘정치 혐오’와 지명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특히 이들은 과거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 ‘제3 독자신당’의 창당 대신 야당인 공화당 경선 참여를 통해 대권을 거머쥐겠다는 현실적 전략을 취했다.

피오리나는 4일(현지시간) ABC 방송의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해 “미국인은 비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며 “경제가 실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아는 내가 대통령직에 가장 적합하다”고 밝혔다.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염증을 부채질하고 경제대통령의 콘셉트를 내세우는 전략으로 대선전을 치르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한 것이다. 유명 신경외과 의사 출신인 보수 논객 벤 카슨도 지난 3일 공화당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그 역시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나라가 심각한 곤경에 빠져 있다는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전체적인 리더십이 부족하다”며 기존 정치권과의 차별화를 내세웠다.

그런가 하면 이들은 각자 분야에서 성장한 성공스토리나 정치적 지명도를 획득한 과정 등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피오리나의 경우 ‘힐러리 때리기’로 일약 명성을 얻고 일각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대항마로 거론돼온 인사다. 그는 대선 출마선언을 하면서도 “클린턴은 신뢰할 수 없다”며 2012년 클린턴 전 국무장관 시절 발생한 리비아 벵가지 사건과 개인 이메일 스캔들, 클린턴 재단의 기부금 논란 등을 거론했다.

카슨 역시 2013년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와 세제정책을 정면 비판해 보수층의 주목을 받았다. 심지어 그는 ‘오바마 케어’에 대해 “노예제 이후 최악의 제도”라거나 동성애에 대해 “사람들이 감옥에만 다녀오면 게이가 되어 나온다”는 등의 극언을 쏟아내는 등 ‘오바마 때리기’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대선 유세의 핵심소재로 활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피오리나는 최근 “오직 미국에서만 비서로 시작해 기업 CEO가 되고 대선에 출마하는 게 가능하다”며 자신이 ‘아메리칸 드림’의 수혜자임을 강조했다. 실제 그는 1976년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UCLA 로스쿨을 다니다 한 학기 만에 중퇴하고서 부동산회사의 비서로 일하다 기업 CEO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카슨 역시 싱글맘 밑에서 자라 명문 예일대학을 졸업한 뒤 미시간 의대를 거쳐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최연소 소아신경과장이 됐다. 이 자리에 간 최초의 흑인으로 그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적 인물이다.

이러한 화려한 이력에도 두 사람의 약점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공직 경험이 없는데다 지명도가 기존 정치인들에 비해 턱없이 낮다는 점이다. 카슨의 경우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 6% 정도의 전국적 지명도를 보였고 피오리나는 그보다 낮은 1% 수준에 그쳤다. 난립하는 공화당 잠룡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5일 이들이 대선 레이스에서 균열을 주는 것 이상을 하려면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면서 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기대된다고 전했다. /디지털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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