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뒤 약탈장으로 변한 바그다드에서는 뉴욕 타임즈가 `근래 중동 역사에서 최대의 문화 참사`라고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 떼의 시민들이 국립 박물관을 습격, 이라크 국립 박물관의 고대 유물 17만 점이 이틀 만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는 땅. 인류 최초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수메르 문명으로부터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이슬람 문화가 차례로 번창한 지역. 아라비안 나이트, 알라딘의 램프, 에덴 동산의 전설이 있는 곳. 그 소중한 땅의 박물관에서 수메르 시대의 하프, 함무라비 법전 서판, 아카디아 왕의 두상과 같은 최고의 유물들이 사라졌습니다. 다른 지역의 박물관과들도 약탈을 당했다니 얼마나 많은 문화유산이 사라졌을지 모골이 송연합니다. 약탈자들보다 이를 방치한 점령자들에게 더 큰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더 우리를 분노케 합니다.
이 야만의 시대에 예술에 대해 말하는 것은 맥 빠지는 일입니다. 전쟁이 한창일 때 국립창극단에서 윤봉길 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청년시대`를 공연했는데 이 기간 동안 우리는 더욱 기운 빠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의인이며 용감한 애국자인 윤봉길 의사를 그린 이 작품은 대중의 흥미를 끌지 못했습니다. 연일 최첨단 무기의 공습과 탱크와 미사일의 화려한 전쟁 쇼가 쏟아지는데 굳이 극장까지 와서 아날로그 시대의 독립투사를 볼 마음이 들겠습니까?
지난달 15일자 가디언 지에 실린 리처드 리어라는 무용 평론가의 글이 `몸`지 4월호에 소개되었더군요. 그가 최근 뉴욕의 대학에서 연기 공부를 하는 대학원생들을 만났는데 한 학생이 “전쟁 중에 배우로서 무대에 오르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는 “나도 예술이 쓸모 없다는 데 동감하지만 삶 역시 마찬가지이고 삶의 `무용함`에 대한 깨달음이야말로 우리가 예술에 부여하려는 목적이지. 우리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창조하기 위한 `문명`과 `테러리즘` 사이의 이원적 갈등에 간여하고 있다고들 해. 만일 무엇인가 변하게 되어 있다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른 이들을 이해하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는 거야.”라고 대답했답니다.
그의 현명한 대답을 무력감에 빠진 수많은 문화 예술인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예술가들이 존재하는 한 예술 창조는 영원히 계속되어야 하며, 그것이 단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호소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의미 있는 행위이며 그 행위들이 모여 인류의 문명이 건설되어 가리라는 신념, 그리고 그 문명이 군화와 광기에 의해 사정없이 짓밟히더라도 어디선가는 또다시 문명을 건설하는 사람이 있을 때 인류는 살아 남을 수 있다는 확신 말입니다.
<김명곤(국립극장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