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1 머신과 장비에는 현존최 고 수준의 안전기술이 적용 돼있다. 때문에 사고로 차체 가 산산이 부서져도 레이서 는 안전하게 보호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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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1 레이서들은 레이스를 펼치는 내내 극한의 상황에 자신의 몸을 내던져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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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월22일부터 3일간 대한민국은 자동차 굉음으로 진동하게 된다. 전남 영암에서 펼쳐지는 ‘포뮬러원(F1) 코리아 그랑프리’ 때문이다. 세계 최강 레이서들이 격돌하는 F1 레이싱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스피드다. 시속 350㎞로 질주하는 F1 머신을 보면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다. F1 머신이 이처럼 무서운 속도를 낼 수 있는 근간에는 2중, 3중의 확고한 안전시스템이 있다. 안전이 보장되는 최대한의 한도 내에서 속도경쟁을 벌이는 것. 이를 보면 F1 레이싱은 ‘속도와 안전의 승부’라고도 할 수 있다.
◇ 시속 500㎞ 파편도 튕겨내는 헬멧
F1 레이서의 안전을 담보하는 선봉장은 바로 헬멧이다. 신체가 외부에 노출되는 F1의 특성상 레이서의 머리를 보호하는 것이 안전의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속 300㎞ 이상의 속도에서 충돌이나 전복사고가 났을 때 레이서의 머리에 가해지는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따라서 F1 헬멧은 일반 헬멧과는 차원이 다른 강력한 내구성과 내충격성이 요구된다. 화재에 대비한 고도의 내화성도 필수적 요소다.
이를 위해 F1 헬멧의 외피는 1만2,000가닥에 이르는 고강도 탄소섬유로 제작된다. 탄소섬유 한 가닥의 두께는 머리카락의 15분의1에 불과하지만 강철보다 더 단단하다. 헬멧 안쪽 역시 방탄복 소재로 쓰이는 아라미드섬유에 폴리에틸렌ㆍ알루미늄ㆍ마그네슘ㆍ에폭시수지 등을 덧대 내구성과 내충격성을 극대화한다.
덕분에 F1 헬멧은 초속 9.5m의 외부충격을 견뎌낸다. 또한 800도의 고온에 45초간 노출돼도 변형이 일어나지 않으며 이때 헬멧의 내부온도는 70도 이하로 유지된다.
특히 시야 확보를 위한 헬멧 전면 바이저의 내충격성은 놀라움 그 자체다. 강화 플라스틱보다 내구성이 2~3배 뛰어난 폴리카보네이트가 주로 사용되는데 두께가 3㎜밖에 되지 않지만 시속 500㎞로 날아온 물체가 직격해도 2.5㎜ 이상 홈이 파이지 않는다.
2010 영암 F1 그랑프리 운영법인 코리아오토벨리코퍼레이션의 김재호 부장은 “다른 차량에서 떨어진 파편, 트랙 위의 작은 돌멩이 하나도 고속 주행 중인 F1 레이서에게는 치명적 흉기가 된다”며 “지난해에 시속 250㎞로 연습주행 중이던 한 드라이버가 앞선 머신에서 분리된 800g의 스프링을 머리에 맞았지만 헬멧 때문에 목숨을 건진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F1 헬멧의 외피에는 첨단 공기역학기술이 접목돼 있으며 내부는 레이서의 머리를 3D 스캔해 완벽히 밀착되도록 맞춤설계된다.
◇ 용암도 이겨내는 방염 슈트
최첨단 과학기술과 고가의 소재, 까다로운 제작 과정이 녹아 있는 만큼 F1 헬멧의 가격이 비싼 것은 당연하다. 최소 수백만원은 기본이며 미하엘 슈마허 등 A급 선수들의 헬멧은 2,000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레이서들에게는 헬멧과 더불어 목 부분에 결착하는 탄소섬유 소재의 ‘한스(HANSㆍHead and Neck Support)’라는 보호장구도 제공된다. 한스는 충돌 및 급정거시 레이서의 머리와 목에 가해지는 충격을 경감해주는 장비로 국제자동차연맹(FIA)의 테스트 결과 각각 68%, 86%의 충격량 감소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복에도 어김없이 안전과학은 숨어 있다. 그중에서도 사고 후 화재로부터 레이서를 지켜주는 내화성은 F1 슈트의 최우선 가치로 꼽힌다.
FIA의 규정에 따르면 실과 지퍼를 포함해 슈트의 모든 부분은 최대 800도의 화염 속에서 최소 12초를 버텨야 한다. 화산에서 분출되는 용암이 약 700~1,200도이므로 용암도 이겨낼 방염능력이 요구되는 셈이다.
이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F1 슈트는 현존 최고의 방염 소재인 듀폰의 노멕스(Nomex)를 2~4겹 겹쳐서 제작한다. 또한 상ㆍ하의가 일체화된 오버올(overall) 형태로 만들어 화염이 침입할 틈을 없앤다. 레이서들은 여기에 내화성 속옷을 추가로 착용해 열기에 의한 피부손상 가능성까지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이밖에 F1 슈트에는 어깨 부위에 손을 끼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긴급 상황에서 안전요원들이 머신에서 레이서를 신속히 끌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F1 슈트의 가격은 약 20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 벌집 구조로 강도 극대화한 F1 머신
사실 F1대회에서의 사고는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번 일어나면 보는 이들을 아연실색하게 할 정도로 충격적이다. 마치 총알을 맞은 과자처럼 차체가 산산조각 나고는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경우 그런 머신 속에서 구출된 레이서들은 멀쩡히 일어나 관중에게 손을 흔들며 자신의 건재를 알린다. 헬멧과 한스만으로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그 비밀은 F1 머신의 운전석에 있다. 운전석 전체를 하나로 일체화한 모노코크 구조로 설계해 물리적 충격에 대한 대응력을 높인 것. 특히 지구상에서 중량 대비 강도가 가장 센 육각형 벌집 구조의 알루미늄 패널에 탄소섬유를 코팅한 소재를 채용해 내구성을 극대화했다. 이에 힘입어 F1 머신의 운전석은 윗면 7.5톤, 측면 3톤의 충격에도 끄떡없다. 또한 레이서가 정신을 잃더라도 신속한 구출이 용이하도록 운전석 내부의 좌석은 통째로 탈착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리고 등받이 위쪽의 공기흡입구인 인덕션 포트(induction port)를 포함한 뒷부분에는 롤케이지 형태의 안전프레임을 적용해 무려 12톤의 충격까지 견뎌낸다. 차체가 조각나거나 전복돼도 레이서가 앉아 있는 운전석과 그 주변은 안전하게 보호되는 것이다.
F1 머신의 안전성에는 민무늬의 슬릭 타이어도 한몫한다. 무늬가 없는 만큼 노면과의 접지 면적이 넓어 안정적 주행과 신속한 가속 및 제동에 효과적이다. 김 부장은 “F1 머신의 슬릭 타이어는 일반 타이어보다 성능이 뛰어나지만 워낙 가혹한 환경에 노출되기 때문에 쉽게 닳는다”며 “한번의 그랑프리에 3,000~4,000개의 타이어가 공급되고 이 중 약 700개가 소비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영암 그랑프리대회에서는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머신 앞쪽의 접지력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름이 기존보다 20㎜ 줄어든 앞 타이어가 사용될 예정이다.
● F1 레이서의 세계
운전석 온도 최대 50도·엄청난 중력 가속도… 극한 환경에 몸 내던져
F1 레이서는 부와 명예가 함께하는 멋진 직업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3D 업종이 무색할 정도다. 레이스를 펼치는 내내 레이서들은 가히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다고 해도 무방한 극한의 상황에 자신의 신체를 내던져야 한다.
그중에서도 온도는 레이서들을 가장 괴롭히는 존재다.
F1 머신의 운전석은 1만7,000rpm까지 올라가며 엄청난 열기를 내뿜는 엔진, 감속 순간에 최대 1,000도로 가열되는 브레이크 디스크, 최대 속도에서 100도로 달궈지는 타이어 등과 인접해 있어 레이서에게 그 복사열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여기에 운전석 자체도 지면과 불과 5㎝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뜨겁기 그지없는 서킷의 열기까지 더해진다.
이 때문에 운전석의 온도는 50도까지 치솟는다. 50도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유명 F1 레이서였던 후안 파블로 몬토야는 경기 중 엉덩이에 저온화상을 입기도 했다.
게다가 레이서들은 통기성과 땀 배출기능이 제로에 가까운 방염 슈트를 입고 있어 고통은 배가된다. 굳이 비유하자면 온몸에 랩을 감고 찜질방에 앉아 있는 것과 다름없다. 때문에 레이서들은 땀을 비 오듯 쏟아낸다. 경기를 마칠 때까지 흘리는 땀이 약 3리터에 달한다고 한다. 헬멧에 별도의 취수구를 마련해 경기 중 수분 섭취가 가능하도록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나마 이뿐이라면 참을 만하다. 코너링을 할 때는 엄청난 중력가속도가 레이서를 덮친다. 주행 중 받는 최대 중력가속도는 롤러코스터의 2배인 4G. 이는 전투기 조종사가 아니면 경험하기조차 힘든 것으로 일반인들은 실신을 면하기 어렵다.
또한 이 정도 압력에서는 핸들 조작이라는 단순한 일도 중노동이 된다. 중력가속도 1G에서 1㎏이었던 물체가 4G에서는 약 4㎏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에 시속 300㎞의 F1 머신에서 핸들을 조작하는 것은 20㎏의 아령을 좌우로 움직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토록 신체를 혹사시키다보니 F1 레이서들은 잠수부들의 잠수병과 마찬가지로 '헤비 레그 증후군(Heavy Leg Syndrome)'이라는 직업병에 시달린다. 이 병은 강한 중력가속도 때문에 피가 하체로 쏠리면서 다리가 붓고 통증이 유발되는 것으로 F1 레이서를 제외하면 전투기 조종사들이 단골 환자다.
관중이 보기에는 그저 자동차를 빠르게 운전하는 것쯤으로 여길지 몰라도 레이서들은 2~3시간 동안 경주를 하면서 매순간 극한의 신체적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레이스를 마친 레이서의 체중이 3㎏가량 줄어드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송주호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축구선수의 경우 경기가 끝나면 체중이 1~2kg 줄어든다"며 "이와 비교할 때 F1 레이서의 운동 강도는 소름 끼칠 만큼 세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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