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과거 부실책임 추궁도 불법행위냐, 경영판단의 과오냐를 명백히 구분하는 신중함이 요청된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기본업무인 대출이 결과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소급하여 처벌하고 경영진의 재산을 압류하고 소모적인 소송을 남발한다면 그것은 자칫 우리 사회의 금융기능 자체를 마비시킬 우려가 있다.은행 대출은 일종의 투자이며 따라서 리스크가 따르게 마련이다. 판단 잘못했다고 정부기관이 경영진의 개인재산을 압류하고 수갑채우려 든다면 누가 그런 자리를 맡겠는가? 그것은 또다른 관치금융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사실 불법행위로 따지자면 정부와 금감위의 지난 2년간의 금융구조조정과정도 수많은 위법과 탈법, 심지어 위헌의 소지를 안고 있다. 그중 단 한가지만 예를 들자면, 지난해 5개은행 퇴출시 정부와 금감위가 부실은행을 인수할 은행을 자의적으로 지목하여 강제로 인수케 한 것은 위법을 넘어 위헌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80년대 미국의 경우을 본 뜬 것 같으나, 미국도 인수은행을 강제로 선정하지는 않았다. 계약자유는 엄연히 헌법상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무슨 염치로 부실의 허물을 모두 금융권으로만 떠 넘기느냐는 퇴출은행을 비롯한 금융계의 불만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부실대출의 원죄는 권력층과 정치권의 금융기관에 대한 부당한 청탁과 압력에 상당부분 있을진대, 금융계 종사자들만 단죄하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도덕적 해이가 아닐 수 없다. 또 지난 2년간 정부는 시장경제를 외치면서도 실상은 초법적인 관치 금융을 해왔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 금융의 도덕적 해이를 극복하는 길은 어디까지나 자율과 책임경영을 통한 내부규율의 확립에 있지, 끊임없는 정부의 간섭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배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