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구자원 회장 집행유예] 법원 "국가경제 기여·개인 치부 없었다"… 재계 "당연한 결과"

피해 전액 변제·배임을 경영상 판단으로 간주
최태원·이재현 회장 판결에도 영향 줄지 관심


지난 2012년 8월 1심 재판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총 네 번의 재판 끝에 구속상태에서 풀려날 수 있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냈다. 고령임에도 1심에서 실형 선고를 받아 법정 구속됐던 구자원 LIG그룹 회장 역시 항소심 재판을 통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이 앞선 재판과 달리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사비를 털거나 핵심 계열사 지분을 포기하면서까지 피해액을 모두 변제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11일 김 회장의 파기환송심을 심리한 서울고법 형사5부(김기정 부장판사)는 "계열사 부당지원 등과 관련해 피고인과 그 친족들의 꾸준한 피해회복 노력이 있었고 피고인이 사비로 1,597억원을 공탁하는 등 실질적인 측면에서 피해 전액에 대한 보전이 이뤄졌다.

양도소득세 포탈세액도 전액 납부됐다"고 양형 사유를 설명하며 김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1억원, 사회봉사 300시간을 선고했다.

김 회장이 대기업 총수로서 그동안 국내 경제건설에 이바지한 점, 현재 건강상태가 매우 나쁜 점 등도 양형에 참작됐다.

특히 재판부는 김 회장의 배임 혐의와 관련해 '경영상 판단 측면에서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재판부는 "계열사 부당지원 행위(배임)를 통해 나타난 피해는 이른바 '돌려막기' 과정에서 그 위험성 규모가 확대 해석된 측면이 있으며 결과적으로 실질적 손해가 발생하지 않은 사정이 인정된다"며 "이 사건의 배임행위는 현실적으로 나타난 한화그룹 전체의 재무·신용적 위험을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우량 계열사의 자산을 동원한 것이었고 회사 자산을 개인적 치부를 위한 목적으로 활용한 전형적인 배임과는 다르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파기환송심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여수 소호동 소재 부동산 저가매각 부분에 대한 배임액수가 272억원에서 47억원 상당으로 줄어드는 등 피해액이 당초보다 축소된 점도 양형에 유리한 요소가 됐다는 분석이다.

같은 날 서울고법 형사5부는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혐의로 항소심 재판을 받은 LIG 오너 일가에 대해서도 피해변제를 주된 이유로 이들의 형량을 감형하는 결정을 내렸다.

특히 구 회장의 경우 "고령인 점과 건강상태를 감안해 형 집행을 유예한다"는 판단을 받아 수감생활에서 벗어나게 됐다. 1심에서 징역 8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던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 역시 징역 4년으로 감형됐다.

재판부는 "회생신청을 앞두고 기업 내부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총수 일가가 담보로 맡긴 자신들의 주식자산을 지키기 위해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한 것은 용납하기 힘든 범죄"라고 우선 전제했다.

그러나 "원심에서 약 570명의 피해자들에게 834억원 상당의 피해를 변제했고 당심에 이르러서는 대주주 소유의 LIG손해보험 주식을 전부 매각 결정해 마련한 자금으로 사실상 피해자 모두와 합의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피해자들이 더 이상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다만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던 구 회장의 차남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은 일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재판부는 "구본엽 피고인의 경우 사건 당시 LIG건설 부사장이었기에 LIG건설의 분식회계 사실과 상환능력 없이 CP를 발행한 사실 모두를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계는 이날 김 회장과 구 회장에 대한 법원의 집행유예 선고를 반겼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김 회장과 구 회장의 선고 결과는 사법부가 깊은 고민 끝에 내린 판단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이 다른 기업 총수들에 대한 선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다른 재계 고위관계자는 "사실 대기업 총수에게 유독 엄정한 법의 잣대를 적용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판결을 기점으로 대기업 총수의 사회적 노력 등을 인정하는 발판이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오는 14일에는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1심 선고공판이 예정돼 있고 최태원(54) SK㈜ 회장의 대법원 상고심도 이달 말 열릴 예정이다.

김 회장은 본인이 차명으로 소유한 위장 계열사의 빚을 그룹 정식 계열사가 대신 갚게 해 주주들에게 수천억원대의 손실을 끼친 혐의와 양도소득세 포탈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12년 8월 1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51억원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항소심에서 징역 3년, 벌금 51억원으로 감형됐지만 같은 해 9월 대법원이 배임액 산정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김 회장은 건강악화 등을 이유로 지난해 1월부터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재판을 받아왔다.

구 회장 등은 LIG건설의 재무제표를 분식하는 한편 기업회생 사실을 미리 계획했음에도 시장에 알리지 않은 채 CP 등을 판매해 총 3,437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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