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현대·기아차, 가격 거품을 빼라

기아자동차의 박스형 경차 '레이'에는 수동변속기 모델이 아예 없다. 경차의 가장 중요한 선택 포인트는 경제성이어서 기아차 '모닝', 한국GM 쉐보레 '스파크'등은 값싸고 연비가 우수한 수동변속기 모델 판매 비중이 10%가량 된다.

모닝의 경우를 보면, 같은 사양에서 자동변속기를 단 모델이 수동보다 120만원가량 비싸다. 연비면에서도 자동(19㎞/l)이 수동(22㎞/l) 보다 리터당 3㎞나 덜 간다.

그런데 레이를 사려면 120만원이나 하는 자동변속기를 선택이 아닌 기본사양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경차 치고는 불량한 연비(17㎞/l)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레이는 자동변속기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사양들을 '옵션'이 아닌 '기본'으로 적용해 세부 상품군을 설계했다. 그 결과 가격이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수준으로 높아졌다. 1.0 가솔린은 가장 저렴한 기본형이 1,240만원이고 최고급 사양은 1,495만원, 가솔린과 액화석유가스(LPG)를 혼용할 수 있는 바이퓨얼 모델은 기본형이 1,370만원, 최고급은 무려 1,650만원이다.

중형인 현대차 쏘나타나 기아차 K5도 세부 상품이 불합리하게 구성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수동변속기 모델을 사려면 아무런 옵션도 선택할 수 없는, 그야말로 '깡통차'를 사야만 한다. 추가요금을 내도 내비게이션도 달 수 없다.

이렇게 상품군을 설계한 탓에 쏘나타와 K5의 수동변속기 판매 비중은 요즘 같은 고유가에도 1% 정도에 그치고 있다. 현대ㆍ기아차가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장기간 소비자의 '선택의 폭'을 제한한 결과 차 소비의 트렌드마저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러던 현대차가 최근 쏘나타 하이브리드에서 '스마트'라는 모델을 내놓았다. 기존 기본형에서 가죽 스티어링휠, 가죽 변속기 손잡이 등을 빼고 가격을 100만원 낮춘 상품이다.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가 워낙 부진하자 내놓은 고육책이다.

현대ㆍ기아차는 신차를 내놓을 때마다 "왜 이렇게 비싸냐"는 소비자의 물음에 늘 "기본으로 적용한 편의ㆍ안전 사양이 많아서"라고 대답했다. 거품을 걷고 가격을 내린 모델을 출시하면 될 텐데 각종 사양을 '세트'로 받아들이게끔 해놓고는 핑계를 대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런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소비자들이 다른 차종에서도 쏘나타 하이브리드 스마트처럼 사양 거품을 걷고 가격을 내린 모델을 출시하라고 요구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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