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수필] 어떤 傍白

신시(神市) 뮤지컬 컴퍼니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올렸던 악극<가거라 삼팔선>의 객석은 만원이었다. 이산가족의 아픔과 만남이라는 우리 시대 공유의 비극을 주제로 한 덕도 있겠지만 주현미라는 대중가요의 여왕을 히로인으로 등장시킨 기획 아이디어가 공연 성공의 비결인 듯 싶었다.<꿈에 본 내고향>으로부터 시작해서<가거라 삼팔선>으로 끝나는 스물두 곡의 흘러간 노래는 중·장년 관객들에게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하지만 극의 주제가 비극적이라 그런지 몰라도 관객의 박수소리는 커튼 콜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이별과 만남의 클라이막스에도 관객은 조용했다. 정서가 메마른 것인지, 관극 수준이 한단계 올라선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래도 안 울래」식을 탈피, 현대무용과 전자음악을 접목시킨 연출 탓인지도 모르겠다. 값싼 눈물과 비속한 웃음을 강요한다지만 악극의 재미는 무대와 객석이 일체되는 「떠나갈 듯한」박수인데 관객은 침묵한다. 하기야 그런 관객의 반응이 악극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엄숙한 비평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딱 한 번 우레같은 박수가 터진 대목이 있었다. 주인공 조만득(김갑수분)이가 만남의 광장에서 포장마차를 하고 있던 고향친구 장윤철을 만나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이었다. 인민군 포로가 되었던 만득은 강제수용소를 탈출하여 중국으로 도망쳤다가 어떤 여인의 도움으로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정보기관으로부터 간첩혐의를 받고 거의 폐인이 되다 싶이 한 처지였다. 만득은 무대 전면으로 걸어 나와 객석에 대고 이렇게 소리친다. 『여기도 도둑놈, 저기도 도둑놈, 세상이 온통 도둑놈들 뿐이야!』박수소리는 나중 커튼 콜 때보다 훨씬 높은 데시빌이었다. 신창원 신드롬이 일어나고 경기지사 부부가 잡혀가고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사람이 부정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던 때이니 박수소리의 의미를 알듯도 싶었다. 이산의 아픔과 재회의 감격과 인기 대중가수의 노래를 압도한 이 한마디 방백(傍白)이야말로 관객 모두가 무대에 올라가 한번 소리치고 싶었던 대사가 아닐까. 관중은 오늘도 정치· 경제· 사회라는 무대에 올려지는 연극을 관극하다. 그리고 정신적 물질적 부패구조에 분노한다. 내일도 방백이나 듣고 박수만 치고 앉아 있을른지 그건 모르겠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