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의 3할은 지하에서 움직인다

불량 경제학
모이제스 나임 지음, 청림출판 펴냄
마약등 '검은경제' 15兆달러… 갈수록 커져
위조상품 시장등 지구촌 경제치부 본격 해부



불법 이민과 마약, 인신매매, 무기밀매…. 모조리 금지된 것들이다. 그런데 왜 존재하고 성행할까. 돈이 되기 때문이다. '신의 거룩한 뜻'을 위하여 성전(聖戰)을 수행한다는 테러단체들도 실은 종교적ㆍ정치적 이유보다 금전적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얼마나 돈이 되길래. 전세계 지하 경제의 규모는 15조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겉으로 드러난 경제규모의 32.6%에 해당되는 검은 경제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도 27.5%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검은 경제가 그 어떤 나라, 어느 업종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 주로 명품을 위조하는 가짜 상품시장을 살펴보자. 2003년 전세계 위조상품 규모 추정액은 5,000억 달러. 20년 전의 50억 달러보다 100배나 커졌다. 자의적ㆍ타의적으로 다른 나라에 팔려나가는 사람들의 숫자도 폭증했다.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신대륙이 발견된 이후 아프리카 노예 1,200여만명이 미주대륙으로 끌려가는 데 400여년이 걸렸지만 동남아에서 3,000만명의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밀매매되는 데는 단 10년이 걸렸을 뿐이다. 무엇이 이토록 빠르게 검은 경제를 키우는가. 신간번역서 '불량 경제학'의 저자 모이제스 나임은 세계화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관세율과 국제자금이동을 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1980년대까지 26.1%였던 평균 관세율이 2002년 10.4%로 떨어지고 1989년 5,900억 달러였던 일평균 국제외환거래액이 2004년에는 1조8,800억 달러로 늘어나는 경제순환 속도의 증가와 더불어 지하경제의 운신의 폭이 커졌다는 얘기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환경도 지하경제에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다. 규모가 커진 국제거래에서 불법을 찾아내기는 건초 더미 속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다. 국제금융 자유화의 상징격인 조세회피지역(Tax Haven)의 하나인 나우르는 인구 1만2,000여명에 불과하지만 400개 은행을 비롯, 4만개 국제기업들이 등록돼 있다. 케이만 군도에도 세계 50대 은행중 3곳을 제외한 47개 은행을 포함한 600개 은행, 수천개의 뮤추얼펀드, 수만개 기업이 존재한다. 여기서 일어나는 금융거래를 추적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당연히 지하경제도 가려내기 어렵다. 구조적으로도 지하경제는 지역주민은 물론 관료, 심지어 정부와 결탁하며 뿌리를 내리고 있다. 돈은 이념의 좌우분포도 가리지 않는다. 마약의 온상이던 콜롬비아에서는 좌익게릴라 자금의 50%, 우익 민병대 돈의 70%가 마약에서 나온다. 원제 'Illicit(불법이나 무면허, 금지라는 뜻)'인 '불량경제학'에는 지하경제의 이면이 자세하게 녹아 있다. 한국도 몇 번 나온다. '위조상품시장의 중심지'로서 서울이 소개되고 남미 불법 이민자들을 착취하는 뉴욕의 악덕 고용주로서 한국인이 등장한다. 북한은 어김없이 국가가 범죄를 일으키는 깡패국가로 소개된다. 책은 세계경제의 치부를 본격적으로 해부한 흔치 않은 종합보고서 격이지만 의문의 여지도 안고 있다. 과연 요즘에도 서울이 명품 위조의 본산인지, 주로 제3세계에서 시작되는 검은 거래의 공급 측면만 부각했을 뿐, 정작 최종 수요지인 미국 등의 문제는 다루지 않은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375쪽, 값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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