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얼핏 보았을 뿐인데도 견뎌내기 어려운 우울함이 내 영혼을 잠식하는 듯 느껴졌다. 나는 그 지역의 단순한 풍경을 둘러보았다. 성벽과 하얗게 죽어버린 나무 둥치와 저항할 수 없는 영혼의 짓누름을, 거기에는 영혼을 침잠시키고 마음을 병들게 하는 구역질 나는 냉정함이 있었다.”
영화 ‘디태치먼트(감독 토니 케이)’는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 ‘어셔가의 몰락’의 바로 이 첫 부분을 주인공 헨리 바스(애드리안 브로디)가 학생들에게 읽어주면서 끝이 난다. 영화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도 학생을 포함한 타인에 대한 무심함과 ‘거리 두기’라는‘구역질 나는 냉정함’이 아닐까.
정교사가 부임할 때까지 정해진 기간에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임시교사 헨리. 학교와 아이들은 사회의 축소판이라지만 학교라는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청소년 혹은 아이들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게 망가져 있다. 공부를 못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책가방에 고양이를 넣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죽이고, 뚱뚱하고 소심해서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무시당하는 왕따 여학생이 있고, 어떤 아이는 이유 없이 그저 화난 상태가 지속돼 본인도 어쩔 줄을 모른다. 이런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교육 당국이 중요하게 여기는 ‘NO child behind left’ 즉 ‘어떤 아이도 뒤처지지 않게’라는 학업성취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은 바로 ‘구역질 나는 냉정함’이다.
영화 ‘디태치먼트’의 다른 한 축은 헨리의 상처다.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고, 이후 엄마와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라지만 엄마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와 헨리 그리고 엄마 사이의 비극에 대해서 영화는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고 헨리도 관객도 그 비극에 대해 짐작할 뿐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복도나 길을 걸을 때, 버스를 타고 멍하니 앉아있게 될 때, 엄마가 죽어있던 모습과 상처받았던 기억들이 찾아온다. 참아질 때는 참고 그렇지 못할 때는 울고 마는 ‘어른’ 헨리도 치유하지 못한 상처로 고통받고 사람들과 ‘거리 두기’는 아이들과 마찬가지다. 이유 없이 나는 분노도 상처로 인한 고통도 누군가로부터 관심을 받는다면 회복이 가능하다. 분노와 상처를 악화시키는 것은 무관심과 냉정함이다. 헨리가 학생들 그리고 거리에서 만난 가출 소녀 에리카에게 보냈던 관심과 애정은 헨리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원했던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그리고 헨리가 상처받은 사람 특유의 상처 공감능력을 가졌다 해도 누구와도 공감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헨리는 자신에게도 구역질 나는 그 타인에 대한 냉정함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울음을 쏟아낼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의 표정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된다. 5월8일 개봉. 97분. 청소년 관람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