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6월 12일] '술 취한' 軍 '잠 못드는' 국민

감사원의 천안함 감사 결과 군의 최고 지휘부가 사건 당일 밤 술에 취해 지휘통제실을 비웠다가 뒤늦게 복귀한 뒤 정상적으로 상황을 지휘한 것처럼 문서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사자는 이상의 합참의장. 서해상에서 북한에 의해 꽃다운 나이의 우리 병사 46명이 안타깝게 희생된 날 군의 보고는 뒤죽박죽이었고 지휘부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비견할 예가 될지 모르겠지만 수년 전 모 출입처에서 있었던 일이 문득 생각난다. 국가적으로 매우 큰 사안이 발생했고 취재를 위해 여러 명의 기자들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당시 현장을 관리하던 관계자에 의해 기자들의 현장 출입이 제지된 적이 있다. 그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한 말이 가관이다. "아니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에 왜 그리 관심이 많습니까.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참으로 어이가 없는 말이다. 이에 기자들의 대답은 이러했다. "몇 년이 아니라 수백년, 수천년에 한 번 일어나는 일을 취재하고 국민에게 알리는 게 기자가 할 일입니다." 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를 보며 수년 전 일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다소의 비약이 있겠지만 감사 결과에서 드러난 군의 총체적 부실 대응의 양상이 당시 기자들의 현장 취재를 가로막았던 관계자의 사고방식과 어쩌면 비슷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번 천안함 사태는 그리 흔하게 일어나는 사건은 아니다. 여기에 적(敵)은 예고 후 도발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불시에 일어나는 일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군의 임무다. 물론 음주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24시간 항시 전투대비태세를 갖춰야 하는 군으로서는 비상상황 발생시 자신의 상황과 관계없이 현장에 복귀해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감사 결과를 보면 군은 북한의 공격을 예상치 못한, 아니 예상하고도 대비하지 못했다. 100만분의1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그에 따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바로 군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차제에 모든 것을 다 바꾼다는 생각으로 전면적인 군 개혁을 실시해야 한다. 단순히 몇 명의 지휘관을 교체해서 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해이해진 기강부터 다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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