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년 8월9일 지금은 터키 서부 지역인 아드리아노플. 로마군 4만여명과 게르만의 일족인 5만여 서고트족 군대가 맞섰다. 친정에 나선 동로마 황제 발렌스는 서로마군의 지원병력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충언을 무시하고 공격 명령을 내렸다. 전공을 독차지하려던 발렌스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서고트군 기병대가 측면을 치기 시작해 전군이 올가미에 걸린 형국이 돼버렸다. 일방적인 전투 속에 친위대마저 무너지고 황제도 목숨을 잃었다. 서고트족의 완벽한 승리. 로마에 역사상 최악의 패배를 안긴 서고트족의 봉기는 세금 때문. 훈족의 침입에 근거지를 잃은 동고트족이 쳐들어오자 로마제국에 사정해 부녀자를 인질로 잡히고 피난처를 얻었지만 마치 전쟁포로처럼 취급하고 무거운 세금을 매기자 무기를 잡았다. 전투 결과는 서고트족에 자치권을 안긴 데 그치지 않고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낳았다. 마침 훈족의 습격에 한파까지 겹친 상황. 로마군이 예전의 로마군이 아니라고 생각한 게르만족은 떼지어 얼어붙은 라인강을 건넜다. 게르만으로 득실거리게 된 서로마제국은 결국 멸망했다. 전투 하나가 고대를 무너뜨리고 중세의 문을 연 셈이다. 전투는 전술은 물론 정치ㆍ경제질서도 바꾸었다. 고대 그리스 이래 무적으로 여겨지던 중장갑 밀집보병대를 무너뜨린 기병이 선호되며 자영농과 시민으로 구성된 군대가 사라졌다. 군인으로서 용도가 없어진 농민은 자연스레 농노로 전락했다. 비용이 많이 드는 기병대의 대량 운영이 어렵자 소수의 엘리트 기사가 등장하고 영주ㆍ제후가 권력을 분점하는 중세 봉건제도가 싹텄다. 아드리아노플 전투는 우리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유럽을 뒤흔든 훈족의 원류가 한민족이라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